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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테스트에 낙방? 하다

하기 싫다 건강검진

by 빅토리아

올해 건강검진은 2년 전과 다른 의료센터에서 했다. 35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온 3일 뒤에.

출국 전 이미 예약한 날짜. 여행 전 검진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염려되어 뒤로 미뤘다. 혹 결과가 충격적이면 35일간의 자유여행을 떠나는데 지장이 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딸애의 회사에서 복지차원으로 주어진 무료건강검진이라 10년 만에 위내시경도 한다. 처음으로 하는 수면내시경이라 전날까지 할까 말까 망설였다. 젊은 날 심한 위통증으로 무려 3번 내시경을 했는데 그땐 수면내시경은 없었다. 그래서 맨 정신으로 입을 벌리고 목구멍으로 기기를 집어넣는 그 역겨운 고통으로 다시는 내시경을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랫동안 소화불량으로 고생했건만 별다른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신경성 위염 정도.


올해 이 대형 의료재단에서의 건강검진은 마치 공장에서 조립 로봇의 부품 품질테스트를 거치는 기분을 들게 했다. 물론 결과지는 일주일 후 전달된다.

폐, 위, 콩팥, 심장, 시력, 청력, 유방, 자궁, 뇌, 갑상선 외 모든 부위를 다 검사하진 않았다.


이전 검사병원은 중간의료기관이라 층별로 이동하며 대기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근데 이 의료재단은 한 층에 모든 검사실이 다 있어 대기인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검사실 입구마다 안내직원들이 이름을 부르면 차례대로 들어갔다 나오는 모양새가 마치 인체의 품질테스트 받는 것 같다.


조립인형의 팔을 돌려 잘 부착되었는지

인형의 눈동자가 잘 그려졌는지

두 다리는 제대로 부착되었는지


검사요원들은 거의 무표정이나 친절한 말투로 검진을 한다. 하루에 3백 명 이상 같은 검사를 반복하는 걸 보니 그들 또한 공장의 부품조립하는 로봇팔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체형의 그녀는 내복약에 아주 예민하다. 어떤 약이든 먹으면 토하고 부작용이 있어 피부에 그 흔한 파스도 못 바른다. 그런 그녀는 국가건강검진을 안 받는단다. 어차피 병들어도 약을 복용할 수 없으니 병명 알아봤자 치료할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치료에 대한 의지가 없는 그녀는 그런 생각을 갖게 한 아주 아픈 사연이 있다.


아무튼 뇌 MRI도 처음 찍고, 겁먹었던 수면내시경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지만 누가 내 위장을 보는지 모른다는 사실도 나를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위의 조립인형으로 여기게 했다.


일주일 뒤에 결과지를 받았다. 노화현상으로 여러 수치가 표준범위를 벗어나 있다. 그런데 아주 정밀한 수치에 나도 감탄한다. 대단한 의료기기와 직원을 완비한 의료재단이지만 나도 내 친구처럼 건강검진을 안 받고 싶다.

나도 그녀만큼 자신에게 용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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