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원 >의 보통 남자

보통 남자의 머릿속을 보여주다

by 빅토리아

일본어 강좌를 같이 듣는 수강생이 재개봉된 영화 <철도원>을 보고 너무 좋았다고 단톡방에 소개했다.

이 영화는 2000년에 개봉된 일본영화라는데 제목을 알고 있었지만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바로 예매하여 다음날 관람했다.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어 되도록이면 넷플릭스에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시리즈를 보려 한다. 하지만 후후후 역시 알아듣기는 요원하다. 외국어를 잘한다는 건 나에게 아주 아주 먼 길이다.

그래도 히라가나도 몰랐던 시절에 비하면 아주 일취월장했다고.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기로 한다. 일본에 가면 이제 가게 간판도 읽을 수 있고 여행 다니는데 약간의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철도원>

영화 포스터는 하얀 눈이 내린 어느 시골 마을의 기차선로 앞에 정복을 입은 한 남자가 서있다. 왠지 유명한 일본소설 <설국>을 떠올리게도 하는, 그런 서정적인 느낌의 포스터다.

내가 젊었을 때 이 영화를 봤다면 이번에 내가 알아챈 그 무엇을 인식했을까?

아니다.

그땐 아마 철도원의 나무랄 것이 없는 직업관, 직업조차 세습되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관습, 일본 주부들의 가족에 대한 헌신과 상냥함 그리고 아름다운 설경 등등에 초점이 맞춰졌을 거다.

지금은?

나는 <철도원>의 주인공 한 남자의 머릿속 뉴런을 관찰하고 있었다. 감독이 보여주려 한 건 도대체 무엇일까?

그건 이해받지 못하는, 아니 이해할 필요가 없는 그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보통의 남자는 이렇게 담담하게 살아가고 인생을 끝낸다... 고

그 이야기를 해 본다.


1. 보통의 남자는 아버지가 보여준 모습을 모방한다.

오토의 아버지도 역시 기차운전수였다. 오토가 석탄을 넣는 증기기관차부터 시작한 걸 보면 오토의 아버지는 기차가 일본에서 운영된 지 그리 오래지 않은 시기에 신문물을 운행하는 걸 자부심 있게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에 철두철미하고 어떤 업무에도 오차 없이 수행하는 걸 보고 자랐을 오토는 역시 국가 기간시설의 관리자 역할에 어떤 사적인 이유는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가족이 아파도 죽음을 앞두고 있어도 자리를 비우거나 대체인원에게 부탁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보통의 남자에겐 직장이, 내가 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며 그 머릿속에 다른 것이 들어갈 빈자리가 없다.


2. 보통의 남자는 슬픔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신경이 아주 둔하게 작용한다.

슬픔을 인지하는 건 아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우리들이 어떤 이유로든 눈물을 흘리고 오래 슬퍼하면 기진맥진하여 일어서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은 공감도 훨씬 잘하며 눈물도 잘 흘리지 않는가? 원시시대부터 생존을 위한 싸움에는 힘을 필요로 했고 힘을 비축하기 위해선 감정의 흐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걸 회피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남성들이 진화할 때 감정선이 둔화되어 가장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늦게 반응하는 것이라는 나의 의견이다. 눈물을 흘리면서 힘은 분출되지 않는다. 오로지 분노에 의해서만 제대로 힘을 분출하기 때문에 나이 들수록 버럭할배가 생기는 것 같다. 쪼그라든 에너지라고 한 번 터뜨려야 하는 것이 보통의 남자니까.


3. 보통의 남자도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도 한다. 오토가 근무하는 곳은 일본의 최북단 섬인 홋카이도우의 외진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서 역장으로 퇴임을 앞두고 있다.

옛 동화 (시골쥐와 서울쥐)가 생각난다. 나도 시골쥐였다가 서울쥐가 되었다. 조금은 어리숙했고 신문물의 자극도 늦게 받고 그래서 인식의 개선도 늦게 일어났다. 어른들이 보여준 오랜 관습대로 사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사는 걸자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골이 도시가 되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며느리 눈치 보는 시어머니가 되고 비혼주의가 성행하고 직장인인 보통의 남성들도 육아에 동행해야 하며 부인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걸 물론 친구 같은 아빠로 살아가는 것이 표본처럼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같은 속도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곧잘 재미있게 보던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개들은 훌륭하다?> 개통령 강형욱씨가 개를 길들이는. 참 느낀 게 많았다. 겉모습만 다른 게 아니라 각각의 반응도 아주 다양하다는 것.


인간이면 오죽하랴. 자의든 타의든 진화하기 거부하는 남자라면? 사실 자의로 거부한다는 건 표현의 오류일 수도 있다. 보통남자의 머릿속에 감정선이 아주 약하게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그래서 자의로 감정이 섬세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사람마다 그 과정을 다를 수 있다.


보통의 남자는 감정선을 느끼는 신경이 아주 약해서 그냥 감정을 느끼는 듯, 아닌 듯,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보통의 여자들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철도원 오토는 그 보통 남자더라. 그냥 열심히 살아있어 철도원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아내가 같이 사는 건 하루하루 숨 쉬는 것처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유키코의 죽음조차 제대로 가슴속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감정선이 아주 아주 가는 보통의 남자. 그래서 슬픔을 아주 늦게 느끼는 남자.

그 남자는 너무 슬프지 않은 죽음을 만난다. 많은 보통의 남자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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