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토리아 Mar 29. 2024

굳이 남편을 점수 매긴다면 몇 점?

  작년 12월은 결혼 40주년 되는 달이었다. 생각해 보니  한 남자와 정말 정말 넘 오래 같이 살았다.

젊은 날엔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었는데 이렇게 일주일, 일 년, 십 년 그리고 사십 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보니 살아온 날들이 모두 좋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아마 내가 50대까지 엄청 바쁘고 힘들게 살아와 지금의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 있는 만큼 누리고 살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결혼하고 출산하고 양육하고 그리고 퇴직할 때까지 그 힘들 날들을 가끔씩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다른 어떤 외부적인 것에 하나도 좌우되지 않고 감사하다.


나는 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긴 결혼기간 동안 한 남자를 연구하고 얻은 결론

'이 남자는 스스로를 왕이 아니라 황제라고 여긴다'

그래서

' 집안일하는데 손 하나라도 움직이면 자존심이 상한다'.....(고함)  어딜 감히 남자를

'이 남자는 내가 자신 입안의 혀처럼 굴길 바란다'....(고함) 말하기 전에 알아서 해야지

'이 남자는 분노조절장애자이다'

이런 나만의 결론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책과 사례를 공부했다. 환갑 이전까지 35년을 적응하고 순종하고 혀처럼 굴려고 늘 자기 검열도 하고 분노조절 심리상당자격증도 가며 무진 애를 썼다. 힘들었던 시간이다.

하지만 이제야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결론과 판단으로 나를 힘들게 했는지 안다. 오로지 내 경험치 안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깊은 대화는 젊을 땐 결코 나눌 수 없다.  

나만 힘들고, 나만 부족한 것 같고, 친구는 더 잘 사는 것 같고, 남의 자식은 공부도 더 잘하고 얼마나 비교하고 비교당할 것이 많은지....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60이 넘어서면 인생이 보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행간의 숨은 뜻도 알아자리는 나이다. 그래서 오랜 지인들 사이에서 그동안 드러내지 못한 가정사들이 하나둘씩 들춰진다. 그러면서 세상의 반인 남자를 좀 더 제대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젊을 땐 결코 알지 못했던, 책에서도 다 보여주지 못한 다양한 남편들의 행태. 

그러다가 나는 내 남자의 장점을 찾게 되었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남편의 성격적, 성품적 결점을 딸과 아들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 딸은 나만큼 다양한 다른 아빠들의 모습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나이 또래의 성인들도 타인에게 다 보여주고 싶어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딸에게 아빠점수는 85점은 줄 수 있다고 하니까


" 엄마.... 점수가 너무 후한 거 아냐?  50점이면 몰라도"

" 딸!  나도 좀 더 젊었을 땐 몰랐는데 세상에 나와 보니 정말 이상한 남자들 많더라. 그래도 직장일 열심히 하여 너희들 학비 다 대고, 남한테 손가락질 안 받고, 엄마한테 손찌검 안하고.....그 정도만으로도 괜찮은 축에 속하더라구"


" 엄마.... 만일 그 정도로도 못하는 남자라면 결혼하면 안 되지. 원 세상에... 엄마는 점수가 너무 후해."

' 딸아   넌 아직 남자를 잘 모르는구나, 아님 남자 보는 눈이 넘 높든지. 주위에 좋은 놈만 있다면 다행이다만'

이라고 나는 속으로만 말한다.


내 주위의 남편들은 보통 60대 중반부터 70대의 나이를 가지고 있다.  내 경험치는 이 나이 또래의 남자들이라 30대 남자들과는 아주 큰 격차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만.  과연 그럴까? 과연 그럴까?  의문이다.

내 남편이 폭력을 쓰는, 주색잡기에 빠진, 도박에 빠진, 집안 물건을 마구 부수는, 바람을 줄곧 피우는, 분노조절이 안 되는, 경제관념이 없는 남자라고 해도 세상에 그보다 더한 이상한 남자들이 많다는 걸 그 훗날 알게 될 수도 있다.

나의 현재 판단이 늘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만들지는 말자. 나의 노력으로 안 되는 일,  타인을 변화시키는 일 아닌가?  

좀 더 느긋하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걸.....하고 지금에사 드는 나의 후회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자바라기였던 한 여성의 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