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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토리아 May 14. 2024

공죽,놀죽,봉죽 하고 싶다는

퇴직 후의 할매들

  지난주 금요일 모교에서 열리는 퇴임식에 친구의 초대를 받고 과동기 5명과 같이 참석하였다.

하루 전 친구가 예약해 논 숙소에서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내기로 연락이 되었다.

SRT를 타고 2시간 이상 걸리는 내 고향에서 가까운 도시. 나의 대학시절을 보냈던 도시. 바다가 있는 도시로 간다.

졸업한 지 40년이 지났다. 40년 만에 해후하는 나와 그녀들.

강산도 바뀌고 환경도 바뀌고 그리고 사람도 바뀌었을까?  후후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거 이번 모임에서 또 알게 된다.

졸업 후 40년 만에 처음 만나는 과동기 친구들이라 나는 꽤나 궁금하고 그 변화된 모습이 어떨까 하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나를 뺀 그들은 이미 오랫동안 고정적 만남이 있었기에 서로가 익숙한 관계지만 나는 그들과 졸업 후 가까이할 기회가 없어 정말  그녀들의 변한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이름을 바로 불러볼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살이 빠져 얼굴이 핼쑥했던 S,  얼굴과 몸이 불었지만 여전히 활기찬 J,  재학시절엔 서로 말 한마디 붙이지 않았던 Y,  대장부 기질을 보여줬던 M 그리고 자그마하지만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K.

그녀들의 모임도 참 범생스타일임이 틀림없음이다.

미리 준비한 맥주 2캔도 다 먹지 못하고 1명 빼고 다 비주류. 주류인 한 명도 뇌수술 후 금주를 한다 했다. 

그리고 한다는 얘기는 그녀들의 제왕절개수술했던 이야기. 

가로로 배를 갈랐다니, 세로로 배를 가르는 것이 좋다느니.... 


" 30년도 더 오래된 얘기는 그만하고 요즘 얘기 좀 하자  야들아"

" 맞다 맞다  근데 우리들도 40년 만에 이런 얘기는 처음 한다.  그래도 네가 오니 이런 얘기도 하는 거야 "


" 그럼 그 오랜 시간 동안 만났을 때 무슨 얘기하고 보냈니?"

" 요가 동작 가르쳐주고  걷기하고 그냥 그렇게 시간 보내지, 그래도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많이 하긴 해"


각자 직장생활에 충실하고 아내, 딸, 며느리 위치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그녀들이다.  일찍 명예퇴직한 친구, 해외에서 근무한 친구, 정년퇴직한 친구 등등 교사로 다들 일했던 그녀들이다.


  사는 곳이 다른, 살아온 경험들이 다른 우리들은 현재의 각자 위치에서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었다.


" 나는 공부하다가 죽고 싶다"  줄여서 공죽. 정년퇴직 후 바로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공부와 실습을 하던 M,


"나는 놀다가 죽고 싶다" 줄여서 놀죽. 퇴직한 지 5년 차. 혼자서 해외베낭여행도 잘 다녔다는데 강화도에서 열심히 이것저것 모임에 나가며 자연을 즐기고 있다는 J.


" 나는 봉사하다가 죽고 싶다" 줄여서 봉죽. 돌아가신 모친을 생각하며 주위의 독거할머니들에게 말벗과 도우미역할을 자처한다는 K.


나는?  음......... 아무 생각이 없다. 공죽, 놀죽, 봉죽 어느 것도 열심히 빠지고 싶지 않음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살지 뭐. 그녀들의 열정은 부럽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나일뿐.


건전한 그녀들이다. 다들 사진 찍히는 것도 싫어해 내가 인증샷 셀카를 찍으려는데 어찌나 포즈가 안 나오는지 이리저리 옮겨라 해도 말 듣지 않던 그녀들. 지금까지 누가 사진 찍자 하는 말을 아무도 한 적이 없다고. 

간신히 사진을 찍어 인증샷 남기고 행사에 참석하여 축하하고 그리곤 헤어졌다.  40년 만의 만남에서 알게 된  사실은 사람은 그다지 성향들이 바뀌지는 않더라는 것. 


그때도 열심이었고 지금도 열심인 그녀들.

그래. 하고 싶은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자.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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