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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어우러질 때

by 영진

극단주의적인 사상과 콘텐츠의 어떤 점이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일까요?


‘솔직함’으로 위장된 자극적인 혐오가 아이들의 이목을 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라고 시작해 타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극우 유튜브들의 주장이 아이들에게 문자 그대로 ‘솔직하게’, 그렇기에 멋지고 재미있는 것으로 전달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중시하는 태도는 ‘위선’으로 여겨집니다. 민주주의와 진보 정치를 외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는 입시 전쟁에서 남을 이기도록 가르치는 정치인들에 대해 분노합니다. 겉으로는 도덕적인 말을 늘어놓으며 뒤로는 약자를 착취하는 행태에 대해 비판합니다. 기성세대가 반성할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있는 모든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지난 대선 기간에 이루어진 TV 토론에서 한 후보가 여성 혐오 표현을 여과 없이 뱉어 공분을 샀습니다. 기성세대에게 이것은 분노할 일이었지만, 적지 않은 청소년과 청년에게 그는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했기에 ‘멋있는 남자’로 추앙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솔직함’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기적이고 악한 민낯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탄핵 정국 당시 집회에 나갔을 때, 밖에서는 서로 죽일 듯 싸우던 양쪽 진영의 집회 참가자들이 막상 지하철을 타니까 각자 응원봉과 태극기를 가방 속에 숨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모두 자기의 마음을 어느 정도 숨기면서 서로 예의를 갖추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속마음을 모른 채, 누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른 채 함께 살아왔구나.’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솔직하게 다 드러내놓고 행동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래서 이 사회가 유지되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게 민주주의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민주주의가 유지되어야 하고,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다 드러내지는 않은 채, 적절히 절제하고 예의를 갖추며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인격을 침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솔직하게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게 더 쉬운 길입니다. 화가 나면 닥치는 대로 표출하고, 미워하는 이들에 대해 큰소리로 욕하고 비하하는 것을 누가 못해서 안 할까요?


민주주의는 본래 ‘솔직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제도입니다. 존중과 배려는 인간의 본능에 있는 덕목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여 사는 이 사회를 지키고, 그 안에서 다 같이 행복해지려면 본능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존중, 절제, 배려, 관용, 솔직함은 이러한 민주적 덕목과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매력이 될 수 있다고, 그저 ‘솔직하기만’ 한 언행은 이기주의적인 혐오와 다름없다고 아이들에게 선을 그어주어야 합니다.



-권정민,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창비 2025, 97-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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