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좌파 안에는, 이런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일단 신당과 녹색당이 선거연합을 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녹색당은 노동당 내 좌파가 독자정당을 고민하기 훨씬 전부터 노동당 왼쪽에서 양당 중심 정치에 도전해왔다. 이런 녹색당과 신당이 힘을 모으면, 마치 1980년대에 노동당 탈당파(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노동당 내 우파가 탈당했다)가 만든 사회민주당이 자유당과 선거연합을 맺어 활동하다 합당하여 현 자유민주당으로 이어진 사례처럼 어떻게든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녹색당과 손잡더라도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아마도 지역구 기반이 탄탄한 노동당 내 좌파 하원의원들이 수십명 규모로 술타나 의원처럼 탈당을 결행해 신당에 동참하거나, 노동당의 가장 중요한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들이 노동당이 아닌 신당으로 공식 지지 정당을 변경하는 일이 벌어져야만, 양대 정당 구도가 더 크게 흔들리면서 신당이 현실 정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 내 좌파 의원들이나 노동조합들 모두 당장은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 같다.
결국 새로운 정치를 열려면, 기존 정치의 막강한 방패가 돼온 제도들(정부 구성 방식이나 정당제도, 선거제도 등)을 어떻게든 바꿔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어려운 일을 관철하는 힘은 분명 대중운동에서 나올 수밖에 없지만, 이런 제도 변화 없이 대중운동만으로 새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기대는 좀처럼 현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영국의 좌파 신당이든 한국의 진보정당이든 모두, 풀기 힘든 이 숙제를 결코 우회할 수 없다.
-한겨레신문, 2025.8.13. 기사, <문제는 단순다수대표제> 중에서
“새로운 정치를 열려면, 기존 정치의 막강한 방패가 돼온 제도들(정부 구성 방식이나 정당제도, 선거제도 등)을 어떻게든 바꿔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어려운 일을 관철하는 힘은 분명 대중운동에서 나올 수밖에 없지만, 이런 제도 변화 없이 대중운동만으로 새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기대는 좀처럼 현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영국의 좌파 신당이든 한국의 진보정당이든 모두, 풀기 힘든 이 숙제를 결코 우회할 수 없다”
새로운 정치를 열려면 제도를 바꾸어야 하는데 제도를 바꾸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제도 정치권에 들어가거나, 정치권이 제도를 바꾸도록 대중들이 운동을 하거나. 물론 둘 다 필요하다.
대중운동 없이 대중들의 요구 없이 ‘대중들이 바라는’ 제도를 정치권이 알아서 만들 일은 없을 것이다. 대중의 이름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제도 정치권의 원론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바라는 제도는 무엇이며, 대중들의 바람과 운동들을 연결하여 제도 정치권이 제도를 변화시키게 할 만한 역량과 조직이 존재하는가라는 것이겠다.
제도 정치권과 대중 조직의 상호 작용, 상호 침투, 상호 보완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정치는 열리고 사회는 변해갈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위치는 어디이며 바람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나는 작가다. ‘현실을 읽고 바라는 현실을 쓰는 작가’다.
현실을 읽고 거기에 나의 바람을 보태 내가 바라는 현실을 쓰는 작가다.
그것이 나의 위치이며 바람이다.
2025.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