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대응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반갑지만 낯선 풍경이었다. 지난 달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의 SNS뿐만 아니라 수석보좌관 회의, 국무회의, 주한외교단 만찬에서까지 이주민 혐오와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국가 차원의 대처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지게차에 매달려 괴롭힘을 당하는 이주노동자 영상에 공분이 일던 때였다. 또한 중국 국적의 이주민과 재중동포가 밀집한 서울 건대입구역과 대림동, 주한중국대사관이 있는 명동에서 연일 혐중․반공 집회가 이어져 사회적 우려가 높던 때였다.
지난 9월 1~7일 '양성평등주간' 이 대통령은 차별과 혐오 대신 존중과 포용으로 '모두가 존중받는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자고도 했다. 이런 장면이 낯선 건,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혐오차별 대응의 책임에서 가장 멀리 비껴나 있던 주체가 바로 정치였기 때문이다.
기대를 품기엔 자연스러운 의문이 뒤따른다. 노골적으로 '나중에'를 표명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유보적인 이재명 정부의 '혐오·차별 방지'와 사회통합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것은 '차별금지'를 외면하는 정치가 오히려 '혐오 규제'에 적극 나서는 모순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과제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혐오표현 리포트>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일반화된 혐오표현의 규정을 담고 있다. 혐오표현이란 한마디로 성별, 장애, 나이, 출신지역, 인종, 성적지향 등 '특정 속성을 가진 집단(표적 집단)'을 향해 '부정적인 관념과 편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면서 '차별을 정당화하고 조장․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표현이다. 다수의 연구자가 강변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욕설, 비방, 모욕과 '혐오'를 가르는 핵심적인 차이는 바로 마지막 요소,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한다는 점이다. 개인이든 불특정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든,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에서 발생한 것이든, 혐오표현은 '구조적 차별' 위에서 표출되며, 따라서 역사적으로 배제·소외되어 온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효과가 전제되지 않는 '표현'은 '혐오표현'으로 보기 어렵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국제인권단체 아티클 19(ARTICLE 19)가 "'혐오'는 단순한 편견과는 다르며, 반드시 차별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권은 혐오표현을 차별과 연관짓지 않고, '막말'이라는 차원에서 대응하면서 차별금지와 평등증진이라는 목적을 삭제해왔다. 또한 혐오표현의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하면서 혐오 전반에 대응할 국가의 책임과 역할은 희석해왔다. 그 사이 혐오의 확산에 대한 문제의식은 주로 혐오표현을 어떻게 '형사처벌'할 것인가를 규정하려는 법제도 차원에 갇혔고, 편견-혐오-혐오표현-차별행위-증오선동-증오범죄라는 연쇄고리를 끊어내며 차별을 해소해나가려는 정치적 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바로 그 규범과 의지를 사회적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 왔다. 혐오의 맥락을 가시화하고 부당한 차별을 차별로 제기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나중에 체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워온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 앞에 놓인 소수자들이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지원하는 과정,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반이 혐오·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촉진하는 과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혐오를 지목하며 대응하는 것은 결국 '보편적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모두가 평등을 요구할 수 있는 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혐오에 대한 규탄과 규제, 방치의 굴레를 벗어날 출발점은 이미 그려져 있다. 이재명 정부가 혐오·차별을 방지하겠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결코 우회할 수 없다.
-프레시안, 2025.9.9. 기사, <차별금지법 우회한 혐오 대응은 불가능하다> 중에서
"'나중에'를 표명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유보적인 이재명 정부의 '혐오·차별 방지'와 사회통합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것은 '차별금지'를 외면하는 정치가 오히려 '혐오 규제'에 적극 나서는 모순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과제다."
"개인이든 불특정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든,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에서 발생한 것이든, 혐오표현은 '구조적 차별' 위에서 표출되며, 따라서 역사적으로 배제·소외되어 온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효과가 전제되지 않는 '표현'은 '혐오표현'으로 보기 어렵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국제인권단체 아티클 19(ARTICLE 19)가 "'혐오'는 단순한 편견과는 다르며, 반드시 차별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혐오에 대한 규탄과 규제, 방치의 굴레를 벗어날 출발점은 이미 그려져 있다. 이재명 정부가 혐오·차별을 방지하겠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결코 우회할 수 없다."
2025.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