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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Sep 14. 2023

나에게 쓴다

1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나에게 쓰는 편지’다. 너에게 당신에게 그들에게 쓰는 글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쓰는 편지다. 나를 위해 쓰는 글이다. 혹여 나의 글을 읽고 당신이 불편하다면 나의 글이 당신에게 불편할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읽는 모든 글도 나를 위해 읽는 글이다. 나는 어떤 글을 읽고 평가하지 않는다. 평가하지 않으니 남의 글을 읽고 불편할 일도 없다. 그럼에도 나를 불편하게 하는 내용이 있다면 그를 통해 나는 나를 읽는다. 나를 돌아보게 해 주어서 감사하게 여긴다.     


나에게 재미도 감동도 배울 것도 없는 무의미한 글은 없다. 다만 글쓴이가 자신에게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를 읽으려 애쓸 뿐이다. 우리는 서로를 읽는다. 서로를 위해서 말이다. 읽고 쓰는 것은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다만, 서로, 읽어주는 것, 쓰게 해주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2     


나는 주로 ‘자본주의’를 읽는다. 자본주의와 나의 삶의 관계를 읽는다. 나는 ‘자유과 평등’, ‘사랑과 아름다움’을 읽는다. 자본주의와 그것들의 관계를 읽는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맑스의 ‘필요와 자유’에 대한 글쓴이의 입장을 읽는다.     


맑스는 ‘필요의 영역’과 ‘자유의 영역’을 구분했다. ‘필요의 영역’이란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생산·소비 활동의 영역을 가리킨다. 그에 비해 ‘자유의 영역’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는 않아도 인간다운 활동을 위해 필요한 영역이다.     


맑스는 ‘자유의 영역’을 확대하길 추구했다. ‘자유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의 영역’을 없앤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에게 의식주는 반드시 필요하고 의식주를 위한 생산 활동도 결코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유의 영역’은 ‘필요의 영역 위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맑스가 추구하는 ‘자유의 영역’은 물질적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집단적이고 문화적인 활동의 영역에야말로 인간적 자유의 본질이 있다고 맑스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자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성장만 좇으며 사람들을 장시간 노동과 제한 없는 소비로 떠미는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설령 총량을 보았을 때 지금보다 생산이 줄어든다고 해도, 전체를 보았을 때는 행복하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한 ‘자기 억제’를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마구잡이로 생산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자제를 하여 ‘필요의 영역’을 축소하면 ‘자유의 영역’이 확대될 것이다.



3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나에게 쓰는 편지’다. 그러니 나에게 쓰는 글에 의해 ‘일반화’되지 않기를, 나의 글의 ‘거짓과 허위’에 속지 않기를, 나의 글에 ‘선동’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그러지 않으면 된다. 그건 오직 당신의 몫이다. 모든 글에 담겨 있는 ‘부분적 진실’을 읽어 내는 것도 그렇다.     


나는 모든 글을 그렇게 읽고 나에게 ‘다시’ 쓴다. 모든 글에 담겨 있는 ‘부분적 진실’을 읽어 내라고 일반화되지도 거짓과 허위에 속지도 선동되지도 말라고 나에게 쓴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 자신을 배려하는 마음과 잠시 돌아보는 시간이면 가능하다.     


자본주의와 나의 삶의 관계를 읽음으로써 나는 나에게 ‘자유’를 쓴다. ‘평등’을 쓴다. ‘사랑과 아름다움’을 쓴다. 자본주의가 나에게서 빼앗아 간 빼앗아 가고 있는 것들을 쓴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읽고 쓰는 것으로 내 소중한 것들을 되찾을 수 있다. 나에게 쓴다.          



2021.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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