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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이전에 ‘들국화’가 있었다. 20대를 김광석과 함께했다면 10대는 들국화와 함께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전부일 리는 없다. 베토벤도 있고 쇼팽도 있고 존 레넌도 있고 강산에도 있고 신해철도 있고 이문세도 있고 또 있었다.
이문세는 노래만 아니라 이영훈이라는 음악가, 그리고 라디오와 함께 기억된다. 라디오 키즈들의 시간이었고 나 역시 라디오를 많이 듣던 시간이었다. 그중에는 3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있었고 밤 10시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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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때문에 기억나는 그때 그 영화도 있다. <볼륨을 높여라> 밤 10시에 시작하는 반항의 라디오 방송.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엄격한 규율의 학교 안에서 찾아야 하는 청소년들. 미국 애리조나의 고등학생 마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전학 온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마크는 ‘DJ해리’가 되어 학생들의 갑갑함과 불만의 목소리를 대신해 주는 해적방송을 시작한다.
‘내 안의 모든 것을 믿어요’, ‘소리 높여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못하게 계속 얘기해’. 해리의 방송은 학생들에게는 해방감을 학교에게는 학생들의 일탈을 가져다주었고 급기야 학교는 관련 학생들을 퇴학시키고 선생님까지 해고한다. 해리는 범죄자로 체포되지만 학생들은 해리의 뒤를 이어 각자의 방송을 시작한다.
영화를 떠올리다 문득 학교를 생각한다. 열려 있기만 해서도 닫혀 있기만 해서도 안 되는 학교의 어려움이 생각난다. 열린 문을 닫는 것보다 닫힌 문을 여는 게 어렵고 학생들 스스로 문을 여닫게 만드는 게 제일 어렵지만 그게 가장 큰 가르침이자 배움이 아닐까, 그런 학생들이 되어가는 만큼 학교도 열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시간 그 영화에 매료되었던 것은 나 역시 영화 속 학생들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해리의 뒤를 이어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DJ들은 라디오뿐만 아니라 팟 캐스트나 유튜브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 삶의 해방을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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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의 노래들 중에서 기억에 남은 노래는 이영훈 작사 작곡의 ‘광화문 연가’이다.
이제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 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이문세, ‘광화문 연가’)
그때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이 좋았는데 이제는 ‘아직 남아 있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 좋다. 아직 남아 있는 그곳들이 반갑다. 만물의 만남이 기적과 같은 일이라면 만남도 헤어짐도 가벼이 여길 수 없겠으나 그 또한 연에 따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연의 맺고 끊음도 간절함이나 절박함이 이끄는 때에 따른 것이 아닐까. 그때를 애써 이끌며 때가 왔을 때 붙잡거나 놓치지 않는 것이 흐르기만 하는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만물의 연은 이어지고 끊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21.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