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예술의 경험은 우리의 세계가 그리 좁은 것이
아니라는 것, 부단히 느끼고 꿈꾸는 한 더없이
넓게, 깊게 확대될 수도 있다는 것, 단순히
확대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끼는
가운데 스스로 변할 수 있음을 깨우쳐준다.
나아가 이 깨우침은 우리가 우리 삶을 ‘사는 데’로
이어져야 한다. 내가 내 삶을 ‘실감 있게 살아가는
데’로 이어져야 한다. 살아가는 데로, 이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삶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심미적 경험은 자기 삶의 향유에서 잠시 완성된다.
[문광훈, 미학수업, 10]
261
예술이 아름다운 것은 예술 자체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경험에서 오는 감각의 쇄신 때문이다.
감각의 쇄신은 삶의 쇄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넓고 깊은 삶의 지평을 떠올리게 하지 못한다면,
예술은 쓸모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다른 것의 상상이
없다면, 그 미는 죽은 미다. 이 지평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다른 가능성, 다른 삶의 형성
가능성이야말로 곧 예술의 가능성이고 아름다움의
가능성이다. 다르게 살 수 없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의
배반이다. 심미적 경험이 삶의 변형에 이어지지
못한다면,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문광훈, 미학수업, 11]
262
스스로 고양되지 않는다면 예술은 왜 필요하고,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면 그 경험은 어디다
쓸 것인가? 느끼고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은
어떤 종류의 꿈꾸기이자 일하기다. 즉 살아가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미학 수업은 내가 내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데 기여해야 한다. 마치 철학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듯이, 미학은 삶을 삶답게
느끼고 생각하며 만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그 삶을 마침내 ‘자기 자신의 것으로서’
살게 한다.[문광훈, 미학수업, 11]
263
예술을 통한 삶의 변화가 의무일 필요는 없다.
의무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부담스럽지
않은가? 억지로 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비강제성은 예술의 가장 큰 특성 가운데 하나다.
비강제적이라는 것은, 거꾸로 말하여, ‘자발적’이고
‘자율적’이라는 뜻이다. 예술은 각 개인의 선택과
결정과 행동의 자발성을 북돋아 준다. 예술이 그렇고
교육이 그렇다. 예술은, 느리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이렇게 선택한 것을 장려한다. 그리하여 예술의
경험은 억지로 혹은 누가 시켜서 혹은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기꺼이, 그래서 자발적으로
하는 유쾌한 일이 된다.[문광훈, 미학수업, 12]
264
감각의 쇄신을 통한 삶의 자발적 쇄신, 아마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감각에 물길을 대는 일은 삶의 물길을 대는 데로
이어져야 한다. 삶을, 마치 예술품처럼 다독이고
버무리며 주조해가는 것, 그렇게 만들어가는
매 순간순간이, 비록 좌절을 피할 순 없지만,
가능한 한 즐겁고 유쾌하게 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삶을 최대한으로 온전하게 주형해 가는 것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을 이미 심미적으로
구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삶의 자발적 구성,
바로 여기에 미학 수업의 목표가 있다.
[문광훈, 미학수업, 12]
2025.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