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개 과정의 총화

by 영진

제일원리를 거부한다는 변증법적인 논의가 여차하면 또 다른 형이상학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그다음에 개념의 운동과 관련해서 변화 발전과 관련한 얘기지만 동일성 철학의 측면 얘기할 때 동일성 철학에서 핵심은 ‘진리는 전체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체가 변화 발전해서 최종 단계까지 갔을 때 동일해지는 것이다. 개별자들은 다 모순에 빠진다. 전체가 되어야만 동일성 철학이 완성되는데 그 전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다.

아도르노에게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전체라는 것이 분석도 안 되고 개념으로 파악되지도 않는 비합리적인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그래서 자연 전체도 아니다. 헤겔의 경우는 최대의 전체, 개념의 운동을 통해서 매개 과정 전체를 통해서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이 전체는 맑스가 얘기하는 구체적인 것과 거의 비슷하다. 맑스는 ‘구체’를 ‘제반 규정들의 총화’로 얘기한다. 반면에 추상은 그런 데서 뜯어낸 것이다. 뜯어낸 것이고 하나를 뽑아낸 것이고 압축해서 뽑아낸 것이다. 그것들의 총화가 구체적인 것이다.


과학은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해 가야 된다고 보고 ‘추상에서 구체’로 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맑스가 얘기할 때 그것은 헤겔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헤겔을 그 자리에서는 비판한다. 그렇게 나타난 구체라는 것은 사유의 산물인데 헤겔이 사유의 산물을 실제 현실의 구체와 혼동한다고 비판한다.




사유의 산물과 실제의 구체를 동일시한다. 이것은 관념론이라는 비판이다. 맑스는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알튀세르가 그걸 물고 늘어지면서 이론적 대상과 실제 대상을 구분해야 한다는 논리로 빠져든다.


‘이론적 실천’이라는 개념을 만든다. 알튀세르는 본인이 유물론을 고수하는 척하면서 자기가 또 관념론에 빠진다. 이론의 척도는 실천이 아니다까지 가고 그 척도는 이론 내에 있다고, 이론적 실천 내부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로 가면서 관념론이 된 것이다.


아무튼 이 전체는 첫째로 그냥 뭉뚱그려서 우리가 분석도 못하는 신비로운 그런 전체가 전혀 아니다. 유기론적인 또는 유기체론적인 것이 아니라 그런 ‘매개 과정의 총화’로서의 전체다. 이것이 아도르노가 지적하는 부분이다.


-하영진, '상호작용의 구체적 내용', <도시의 무지개> 260-262쪽.




도시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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