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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취글

따듯한 killer

by 영진

L은 킬러다. 오늘도 그는 총을 챙겨왔다. 브런치의 작가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글을 쓰는 ‘취글 프로젝트’에 총을 챙겨 온 그를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가 꺼내 오지는 않았지만 그의 차에는 총보다 무서운 무기들이 잔뜩 실려 있을 것이다.


그가 작가님들을 죽이기 위해 우렸는데 찾을 수 없다고 말한 샤브샤브를 위한 육수라든지, 아직 마시지 못한 소주라든지. 고작 이 정도의 부족한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기들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L은 킬러다. 그는 취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내내 다른 작가들의 시간을 뺏지 않으면서 거의 모든 요리를 준비하는 요리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그가 킬러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그는 가족들에게도 자신이 킬러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그는 가족들을 살려 왔다고 했다. 그는 작가님들을 살리는 Killer다. 그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마구 총을 쏴대는 킬러다. 작가님들을 살리는 사랑의 총을 말이다.


그는 킬러다. 나는 오늘 그로 인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가 준비한 작가님들에 대한 사랑이 담긴 멋진 음식과 작가님들 자신도 몰랐던 이야기가 나도 몰랐던 이야기가 죽을만큼 나를 살려주었다.


그는 킬러다. 다른 무엇보다 글이라는 무기로 세상을, 가족을, 작가님들을 살려주는 킬러다. 그렇게 우리를 죽도록 살려주면서 매일 하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는 따듯한 킬러다.




2025.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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