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삶은 불공평하다. 죽음도 불공평하다.
다른 점이 있다. 삶의 불공평은 계급, 성별 등
구조적인 이유가 있고 어느 정도 인식의
공유가 가능하다. 아픈 과정, 죽음의
불평등함은 설명할 길이 없다. 인명재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몸의 고통은 공감이
불가능하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홀로 가는
길이다. 가까운 이가 고통으로 살과 뼈와
피가 질서를 잃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경험한 이들은 알 것이다.
[정희진처럼 읽기, 272]
304
임지현은 <홀로코스트와 탈식민의 기억이
만날 때>라는 글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찾아온 대학생 한나 아렌트에게
하이데거가 한 말을 전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네.”
인생에서 어려운 일이 세 가지 있다.
생각, 사랑(관계), 자기 변화.
[정희진처럼 읽기, 278]
305
공부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겸손하다.
자신에게 몰두한다. 계속 자기 한계,
사회적 한계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는
사회는 생각하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희진처럼 읽기, 278]
306
이해는 아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선입견이든
지식이든 기존의 앎을 버리지 않는 한,
새로운 것은 절대 우리 몸에 들어오지 않는다.
충돌은 앎의 지름길이다. 먹지 못할 떡을
두 손에 든 사람들이 있다. 절충은 아는 방법,
인식할 수 있는 능력, 앎 자체와 가장 거리가
먼 행위다. 욕심일 뿐 지식도 정보도 아니다.
[정희진처럼 읽기, 284]
307
간혹 매우 총명한 이들과 조우한다.
나는 그들의 ‘비법’을 알고 있다.
이해는 영혼이 순수한 사람의 특권이다.
대상에 대한 사랑, 이해하고 싶어서 기득권을
포기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자신을 보수(保守)하지 않는다.
[정희진처럼 읽기, 284]
2025.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