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장애정의란 장애가 백인 중심적으로, 남성 중심적으로, 혹은 이성애 중심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정치운동을, 그리고 그런 관점을 공유하는 서로 맞물린 많은 공동체들을 뜻한다. 장애정의와 장애인인권운동의 관계는 환경정의운동과 주류 환경운(36)동의 관계와 같다. 장애정의는 아프고 장애가 있는 유색인들, 퀴어이고 트랜스인 유색인 장애인들, 그리고 주류 장애 조직에서 소외된 모든 이들을 중심에 놓는다.
나아가 장애정의는 비장애중심주의가 인종차별주의, 기독교 우월주의, 성차별주의, 퀴어혐오와 트랜스혐오를 가능하게 만들며, 이 모든 억압 체계가 단단히 맞물려 있다고 단언한다. 장애정의는 우리의 조직화가 아프고, 장애가 있고, (알렉시스 폴린 검스Alexis Pauline Gumbs의 표현을 쓰자면) “부서진 채로 아름다운brokenbeautiful” 우리 몸의 지혜, 필요, 욕망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힘주어 말한다. 이는 선주민과 흑인 및 브라운 전통 안에서 어떻게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신비로운 불구자가 아니라 몸-영혼에 귀한 영민함을 지닌, 어떤 차이가 있는 사람들로서) 가치 있게 여기는지를, 흑인-선주민-유색인 공동체에서 아프거나 장애가 있다는 것이 어떻게 그저 ‘삶’일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는 것을 뜻하고, 또한 아프고 장애가 있는 흑인-선주민-유색인이 어떻게 범죄화되는지를 고찰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비장애중심주의를 깨부수는 해방의 전망을 확고히 하는 일이 곧 사회정의의 일환임을 의미한다. 아프고 장애가 있는 우리 몸들이 매력적이고 영민하고 가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뒤에 남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사랑받는, 동류인,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장애정의에 관한 작업을 할 때, 장애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식민주의가 장애를 창출했는지를 검토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우리는 장애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선주민들의 방식을 우선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흑인과 브라운 공동체 그리(37)고/또는 퀴어와 트랜스 공동체들 모두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우리 중 상당수는 생존을 위해 정부 자금과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장애인차별금지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DA이나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Affordable Care Act, ACA과 같은 조치들을 지켜내고 확대하기 위해 투쟁한다. 하지만 우리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에 관한 법률 제정을 비장애중심주의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고 매진하기보다는, 국가가 인종차별적이고 식민주의적인 비장애중심주의를 토대로 건설되었고 우리를 죽이려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국가가 우리를 구원하지는 않으리라는 점을 인식하는 해방의 전망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신스인발리드가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 운동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뒤에 남겨놓지 않고 함께 움직인다.”
l출처
가장 느린 정의 - 돌봄과 장애정의가 만드는 세계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 지음, 전혜은, 제이 옮김, 오월의봄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