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소통과 고독은 영원히 함께 움직인다. 하나를
선택했을 때 하나가 버려지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인간은 고독을 택한 순간조차 소통을
열렬히 희구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순간조차
자기 안의 고독을 들여다봐야 한다.
[정이현, 작별]
309
가혹하고 비루한 현실 너머 달콤한 꿀이 흐르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미안하지만 소설가의
몫이 아니다. 소설은 다만 이 불감한 세상에
무력하게 내던져진 인물을 통해, 가장 역설적인
방식으로 불모와 소통의 가능성을 동시에
암시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전부다. 이것을
소설의 무기력이라고 부른다면, 담담히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기억하시라. 소설은 이 끔찍한 무기력을 통해
당신에게 다가가려 한다. 다가가고 싶어 당신을 앓는다.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을 환기함으로써 소통을 꿈꿀 수
있다면 나는 영원히 무기력한 소설가로 남고 싶다.
[정이현, 작별]
310
‘네가 작가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편지를
보내온 옛 친구에게 아직 답장을 쓰지 못했다.
친구야, 나는 대단하지도 않고 사소하지도 않단다.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고, 실수가 많아.
하루에도 여러 번, 후회하고 절망하고 질투하고
욕망하지. 스무 살 때의 내가 한없이 불완전한
인간이었다면, 아마 나는 파파할머니가 되어도
완벽한 인간은 될 수 없을 거야.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게 가끔은 몹시 불안하고,
그래도 아주 가끔은 행복하단다.
내 편지를 받은 친구가 ‘바보야, 너만 그런 거
아니야‘라고 가만히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정이현, 작별]
311
정말 중요한 건 좌우비대칭이 아닐지도 모른다.
영혼을 짓누르는 인위적 균형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 ‘삐뚤빼뚤한 나’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그러므로 이 소설(밤의 클라라)은
‘소름 끼치는 상실감을 극복하고 길을 바꾼’ 사람,
즉 용기 있는 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이현, 작별]
312
누구는 빨강을, 누구는 파랑을 좋아한다.
하나의 선택이 누구나 다 만족시켜 주는 경우는
불가능하며 있어서도 안 된다.
세상에는 수 많은 오솔길들이 존재하고,
그 길의 산책자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행복하다.
[정이현, 작별]
2025.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