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눈을 감았다 떠도 달은 변함없이 떠 있었어.
가장 좋은 것은 늘 항상 함께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떠 있었어. 가장 좋은 것은 변한 것처럼 보여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떠 있었어.
가장 좋은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떠
있었어. 선택했기 때문에 길은 우리 눈에서 점점
좁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그러나 그 길의
끝에서 고개를 돌리면 우리가 사랑하는 얼굴들이
같이 걷는 것을 보게 될 거야.
[정혜윤, 스페인 야간비행, 61]
140
내가 내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는 중요한 문제다. 나는 발견되는 기쁨을 말하고 싶다.
자기를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 그것은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이다.
사랑받을 만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음이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이다.
건강한 자기애는 감사와 사랑을 보낼 타인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좋지 않게 행동하면
슬퍼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과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다.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189]
147
나는 이제 내가 사랑해온 세계의 깊은 상처를 본다.
현재와 미래, 자연과 인간, 나와 타인, 이 모든 영역에서
길을 잃은 우리를 본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의 중지를
원할 수 있다. 불안의 중지를 원할 수 있다.
고통의 중지, 죽음의 중지 또한 원할 수 있다.
길을 잃을 때는 이야기를 미래의 관점에서 볼 줄
알아야 하고 앞날이 알고 싶다면 지향점과 방향성이
가리키는 쪽을 봐야 한다. 우리 시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삶의 방향성을 바꾸는 것 뿐이다.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283~284]
178
세상 대부분의 일이 ‘어차피’와 ‘최소한’의
싸움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과 그래도 최소한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절멸하지 않고 싶다는 의지였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소망이었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59]
302
밥을 먹을 때 그 사람과 함께여서 맛이 두 배가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 별 음식도 아닌데 그 사람하고
함께 먹으면 맛있는,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
슬픔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슬픔을 알더라도
드러나지는 않지만, 또 어딘가에는 슬쩍이라도
칠칠맞지 못하게 슬픔을 묻힌 사람이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 오래 보는 거-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60]
2025.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