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
혐오는 특정 대상을 싫어하는데, 그 이유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자기 문제의 반영이자
합리화다. 혐오는 자신과 타인의 인간성을
훼손한다. 악플이 대표적이다. 이에 반해 분노는
자신을 억압하는 대상에 대한 정당한 판단이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존중하는 힘이다.
이처럼 혐오와 분노는 이유, 양상, 효과가
전혀 다른 인간 행동이다.[정희진, 낯선 시선, 83]
340
자유, 평화, 인권은 약자에게만 보장되어야 할
가치이지 보편적인 권리가 아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권리일 때 권리들 사이의
충돌로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강자(주류, 서구, 남성, 서울……)가 자신의 주장을
표현의 자유라고 말할 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테러이며 테러라고 불리는 저항(폭력)을
초래한다. 물론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누가 약자인가,
그것을 누가 정의 하는가 부터가 정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정희진, 낯선 시선, 94]
341
통치 세력이 ‘관용을 베풀어서’ 약자에게 표현의
자유를 허락한다 해도 약자가 곧바로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원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사양’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한국인에게 말의
자유를 허락하되 영어로 말하라는 식이다.
성별, 인종, 계급, 지식 자원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의 언어는 이미 지배 담론과 매체에 포섭되어
있다. 당연히 설득력이 떨어지고, 오해받고,
‘말더듬이 바보’에, 흥분하거나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정희진, 낯선 시선, 94]
342
좋은 글은 가독성이 뛰어난 글이다. 그러나
‘쉽게 읽힌다’는 말은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 쉬운 글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익숙한 논리와 상투적 표현으로 쓰여
아무 노동(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익숙함은 사고를 고정시킨다. 쉬운 글은
실제로 쉬워서가 아니라 익숙하기 때문에
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진부한 주장, 논리로
위장한 통념, 지당하신 말씀, 제목만 봐도
읽을 마음이 사라지는 글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 진정 쉬운 글은 내용(콘텐츠)과
주장(정치학)이 있으면서도 문장이 좋아서
읽기 편한 글을 말한다. 하지만 새로운
내용과 기존 형식이 일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글은 매우
드물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이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쉬운 글은 없다. 소용 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있을 뿐이다.
[정희진, 낯선 시선, 106]
343
어려운 글은 내용이 어렵다기보다는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어려운 글은 없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글,
개념어 남발로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아무도 모르게 쓴 글, 즉 잘 쓰지 못한 글이
있을 뿐이다.[정희진,낯선 시선,106]
344
모든 사회적 관계는 언어에서 시작한다.
다음 사례를 보자.
맘대로 해고를 ‘노동 시장 유연성’이라고 한다.
제주는 육지의 시각에서 보면 ‘변방’이지만,
태평양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관문’이다.
해남 주민들은 해남을 ‘땅끝 마을’이 아니라
땅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장보기 같은 가사 노동은 노동인가, 소비인가?
서구인이 말하는 지리상의 발견은
발견‘당한’ 현지인에겐 대량 학살이었다.
강자의 언설은 보편성으로 인식되지만
약자의 주장은 ‘불평불만’으로 간주된다.
언어의 세계에 중립은 없다.
[정희진,낯선 시선,106]
2025.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