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우리의 최선은 “타인의 어려움을 알 수 없다는
‘좌절’을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존중한다.”
정도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계의 긴장과
고난의 여정에서 새로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동시에 내 안의 주변성을
탐색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대립시키고
위계화하지 않는다. 이때 일상은 깨달음이
주는 아름다움의 연속이 되고 인생과 예술의
길이는 같아질 것이다.[정희진, 낯선 시선, 119]
346
경제 지상주의 가치관에서 성장과 복지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지속 가능’과
‘발전’은 모순적 해결책으로서 ‘말이 되지만’,
‘지속 가능한 복지’는 그렇지 않다. 복지는
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생명 유지를 위한
것이므로, 지속 가능과 복지는 동의어이다.
두 번 쓸 필요가 없다. ‘지속 가능한 복지’는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써, 복지를 시장 친화
용어로 변질시킨다. 수식어의 기본 기능은
의미의 한정이다. ‘지속 가능’은 복지의
수식어로서 복지의 개념을 축소하고
왜곡한다.[정희진, 낯선 시선, 123]
347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라는 말은 언어의
정의(定義)라기보다는, 언어의 개념을
사유하는 출발점, 실마리이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지만, 그 사회(community)가 반드시
국가 단위(국어) 차원에서 강제될 필요도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에
대한 논쟁이 선행되어야 한다. 평화와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라면 모를까,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라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
다시 말해, 어떠한 사회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약속의 의미도, 약속 이행에 대한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정희진, 낯선 시선, 130]
348
어느 사회에서나 사회적 저항 차원에서든
언어유희 차원에서든 기존의 약속을 어기는
실천은 있기 마련이다. “파병하는 나라의
국민이고 싶지 않다.”라는 선언처럼 스스로
자기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된
사람도 있으며, 사회적 약속, 다시 말해
기존 언어에 동의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회 운동은 기존 언어 체계를 의심하고
‘교란’하고 ‘전복’하여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국론이 분열되는 것은, 국론의
이름이란 미명 아래 보장되던 기득권층의
특권을 인식하고 그것이 마치 전체의 이익과
보편인 것처럼 만들어지는 과정을 드러내면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와 이익이 가시화되는
것을 뜻한다. 굳이 언어가 사회적 약속이라는
의미를 고수한다면, 아마 작은 약속 혹은
작은 사회의 약속 정도가 될 것이다.
[정희진, 낯선 시선, 131]
2025.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