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진 Sep 25. 2023

슬픔의 힘

1     


그래도 가을이라서 시시詩詩한다. 애정하는  詩 중에 박노해 시인의 <슬픔의 힘>이 있다.           



울지마

사랑한 만큼

슬픈 거니까     


울지마

슬픔의 힘으로

가는 거니까     


울지마

네 슬픔이 터져

빛이 될 거야*     


* 체게바라에게서 따옴     


- 박노해 '슬픔의 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록 詩          



2     


박노해 시인하면 여전히 ‘새벽 시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다’는 <노동의 새벽>이나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 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 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는 <손무덤>이 떠오르지만 <슬픔의 힘>도 있다.     


<슬픔의 힘>이 실린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2010)는 중남미 여행을 가면서 챙겨갔던 시집이다. 여행을 갈 때 책을 꼭 챙겨가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그와 정반대에 속한다. 일부러 챙겨가지 않는 편이다. 여행 가방의 짐을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여행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현지의 것들을 보고 느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다.      


그런데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시집을 챙겨갔던 이유는 좋아하는 시인이어서 이기도 했지만 그 시집에는 시인이 남미를 여행하면서 쓴 시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표제작인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도 안데스 산맥의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것은 ‘빛’을,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3


지인들이 읽으라면서 중남미 관련 시집, 소설 등을 챙겨줬지만 가져가지 않았다. 시집 한 권만 챙겨갔다. 그런데, 여행을 한 지 수개월이 지나면서 한국인을 거의 못 만나는 여행지에서 한국어를 할 기회가 없었고 한국어에 대한 금단 현상이 오기 시작했다.      


 때문에 시집은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또한, 당시 전자책이  출간되던 때여서 그때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전자책으로 읽기도 했고,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전자책으로 다시 읽으며 조금씩 필사하기도 했다. 주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버스에서였다.              



4     


시집에서 시인은 볼리비아의 탄광 마을인 포토시에서의 노동자들의 삶을 노래하기도 한다. 2013년 중남미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박노해 시인이 몸 담고 있는 <나눔문화>의 ‘라 카페 갤러리’에서 ‘볼리비아 사진전’을 했었다. 내심 시인을 만날까 기대했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시인은 ‘노동의 새벽’과 ‘손무덤’ 때부터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노동자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었다.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고 있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이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에서)        


시인은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노래하고 있다. 박노해라는 한 사람이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여전한 물음이다. 한국에 팔려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은 어떤가. 농촌에는 이제 알 만큼 아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싼 인건비 때문에 일손이 달린다지만 농촌 소멸의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5     


시인은 ‘사랑한 만큼 슬픈 거라고’, ‘슬픔의 힘으로 가는 거라고’ 노래한다. 그의 노래가 나에게 힘을 준다. 그러면서 아직 덜 슬픈 나를 느낀다. 아직 덜 사랑하는 것이리라. 더 사랑해야 더 슬픈 텐데. 그 ‘슬픔의 힘’으로 한 발 더 나아갈 텐데. 그래야 게바라가 말하는 ‘빛’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래도 가을이라서 시시詩詩한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 걸음 2010.

나눔 문화  https://www.nanum.com



2023. 9. 25.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의 해방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