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는

by 영진

내가 남자를 볼 때 특히 중요한 건 큰 키와 큰 눈이다. 이건 물론 미적으로 보기가 좋은 것도 있지만, 내게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나는 습하고 진한 스킨십은 크게 선호하지 않지만 포옹은 좋아하는데, 듬직하고 커다란 품에 폭 안겨 있을 때면, 세상의 모든 거칠고 험하고 매서운 풍파가 그 순간만큼은 가려지는 것 같아서 참 좋다.(이상형)



눈웃음도 아니고 눈의 크기는 왜 중요하냐면, 눈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을 말로 듣기보다는 상대의 눈에서 읽거나 행동에서 느끼기를 훨씬 좋아한다. 커다랗게 확장된 동공, 그 안에 나를 살피고 염려하는 보호 본능, 아기처럼 여기고 귀여워하는 마음, 들끓는 열정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게 보인다. 말로는 거짓을 꾸며내기 쉽지만 눈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꿀 떨어지는 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이상형)



나는 그 사람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닌, 태어나보니 안고 살아가게 된 이런저런 어떤 사정들이. 그가 저지른 죄의 변명이 되어서도, 또한 죄를 저지른 이유가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내가 따뜻한 사람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내가 차가운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맑을 때도 있고, 흐릴 때도 있다. 나에게는 내가 뭔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러므로 함부로 평가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타고난 것들과 범죄의 상관관계)



그가 지적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본인의 부인내용이 서로 실소가 터져 나올 만큼 말도 안 된다는 걸 스스로도 알 거다. 내가 느끼기에 할아버지는 교도소에 가기 위해 죄를 짓고, 부인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사회가 그에게 교도소의 방 한 칸과 세끼 식사를 제공하는 대신, 그가 밖에서 자립해서 살 수 있을 만한 어떤 기회를 만들어 줄 방법은 없을까. 혹은 그에게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함께 살자고 하는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이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몽키스패너 할아버지)



그래서 사는 게 참 고난이도다. 내 인생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다. 집 안도 위험하고, 집 밖도 위험하다. 장애물에 부딪히고 걸려 넘어져 상처가 끊이지 않고, 집은 점점 말도 안 되게 지저분해진다. 나는 가진 장점이 많기 때문에, 생활능력 정도는 좀 없는 게 인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 수준이 너무 치명적이라서 내가 봐도 좀 깝깝하고 답이 없긴 하다.(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



타고나기를 건물이 몇 채씩 있어서 임대수익만으로도 충분한 생활의 영위가 가능해 회사에 안 다니고 하고 싶은 취미만 잔뜩 누리며 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어디엔가 소속이 되어 공노비든 사노비든 밥벌이를 해야 한다면, 기왕 하는 거 조금 더 의미를 두고 나름의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어쨌거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사회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고, 보통은 그게 직장이므로.(일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



이제는 나이가 든 만큼, 어릴 때 마냥 혈기와 치기에 불타는 사랑을 또 경험할 가능성이 그리 크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우연히 뺨에 닿는 한줄기 바람의 차가운 감촉을 느낄 때라든지, 짬뽕에 들어있는 새우를 톡 씹을 때처럼 일상의 사소함을 계기로 뜨거웠던 지난날이 떠오를 때면, 내가 누군가에게 깊이 사랑받던 시절이 재생된다. 그 큰 사랑을 준 바보 같던 남자들에게, 닿지 못할 감사를 전하고 싶어진다.(남성성에 대한 장상(長想)



물론 내가 부족한 부분도 많고 약한 면도 많지만, 조금 의기소침해지는 시기가 올 때면, 할아버지가 전혀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미안해하며 내 손을 잡아주던 그 거친 손의 단단한 악력을 생각한다. 니는 우리 집안 사람이다. 우리 집안은 영리해. 내가 니를 책임 진다. 걱정하지 마라. 하던 그 말을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할아버지가 끝까지 나를 책임져주지는 못했지만, 대신 내가 나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됐다.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된 이유는, 할아버지가 내 고사리 손을 잡고 그렇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술주정)



2025. 12. 5.




문장 출처 - Ubermensch의 브런치스토리 괄호 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