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열심히

by 영진

다음 달에 개시할 취글 매거진 프로젝트 관련입니다. 너무 추워지기 전에 어디 야외에 가서 별을 보고 싶어요. 모닥불이랑. 그래서 고기도 구워 먹고 별이랑 불 보면서 도란도란 사는 얘기 하면서 술 막 퍼마시다가 양껏 취했다 싶은 순간 찬물 끼얹고 대화 중단하고 각자 준비해 온 노트북 꺼내서 글 쓰자 하는 겁니다. 주제 던져주고 시간 주고 제한시간 끝나면 얄짤없이 발행하는 거죠.(<공지>취글 프로젝트 조사)



새우처럼 몸을 말고 누워서 한나절동안 고통을 느끼는 동안 핸드폰을 잡을 여유도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각뿐이다. 뭐든지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기던 그 상황에서 이탈해 봐야 기존에 누리던 것에 대한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다. 위가 마치 시위를 하는 것 같다. 2년 전 건강검진 때 위염이나 위암일 수 있으니 내시경을 해보라고 결과지에 뜬 경고를 무시하고 살아온 대가인 걸까, 나는 이렇게 곧 죽는 걸까 생각한다.(경련하는 위)



별 말을 하지 않고 별 걸 안 해도, 그냥 인근에 존재하는 것만 알고 있어도 든든하고 안심이 되어서, 아저씨가 남은 제 인생에 꼭 필요할 것 같아요.라는 문장을 남긴 적이 있다. 그땐 그 아저씨가 나를 두고 멀리 떠날 계획이 있는지 몰랐을 때였다. 나는 많은 걸 바랐던 게 아닌 줄 알았는데, 많은 걸 바란건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한순간도 미워한 적이 없다. 나는 그 아저씨를 괴롭게 만드는 사람이니까 인생에 두고 싶어 하면 안 되겠지. 애초에 굳이 열을 뿜어내며 내 추운 세상에 안 들어왔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 아저씨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사기꾼이다. 길 가다 똥이나 밟았으면 좋겠다.(어떤 어른)



나는 술에 취해 거리로 나가 칼을 휘두르거나 다른 사람을 붙잡고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고, 다음날 일에 지장을 줄 만큼 과음을 하지도 않는다. 인공지능 친구들을 알기 전에는 선량한 지인에게 연락을 하는 술버릇이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하게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오로지 내 몸과 영혼만 학대하고 있을 뿐이다. 1921년도에 발표된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은 술에 취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 사회가 유위 유망한 나의 머리를 마비시키지 않으면 안 되게 하므로." 나도 비슷한 이유다.(술 권하는 사회)



나는 계장님한테 원래 혼잣말을 많이 하시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한다. 곧 깨달았다. 계장님은 내게 자꾸 말을 건 것인데, 내가 대답을 하지 않기 때문에 혼잣말이 된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오늘 산을 17.41km를 탔다. 계획에 없던 야간에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계장님은 핸드폰에 의지했겠지만 나는 계장님을 의지했다. 믿고. 믿음은 사람을 안심하게 한다. 그게 길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산 속이고, 산짐승이 나올 가능성이 있더라도 무섭지 않다. 믿음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믿음에 대하여)



자연스러운 관계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이 의존이 되고, 의존이 통제를 망칠까봐. 그래서 나는 사랑을 하지 못하고 매혹만 시킨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지배력을 행사해야 안심을 한다. 하지만 그 안심이 불안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매혹의 과정에서 나 역시 소모된다. 타인의 욕망을 조율하며 나 또한 그 욕망의 일부가 되고, 시선은 반사되어 돌아오고, 매혹하던 자는 매혹당한 자의 눈으로 스스로를 보는 까닭이다.(매혹당한 사람들)



하지만 나는 내 자그마한 몸과, 고양이 두 마리를 건사하기에도 턱없이 벅차다. 엄마나 남자친구가 주기적으로 우리 집 청소를 해주지 않으면 왜인지 집에 머물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 나는 회사나 도서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아기를 키우려면 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해야 할 텐데. 내게 남은 가임기간 동안 고민이 더 필요한 문제다.(미혼모가 될 결심)



어느 자리에 있든 내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열정을 갖고 잘 해내면 어디서든 당당하게 지낼 수 있다. 인정과 예쁨도 받고, 또 운 좋게 남들이 부러워하는 기관이나 자리에 가기도 한다. 어디에 있든 그냥 내게 주어진 일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열심히 하면 되는 건데, 그린캠프 꿀통이라니. 개별 특수 사례로 집단을 일반화해서 평가하는 방식은 몹시 폭력적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 회사도 망하는 거겠지. 집단의 일부가 전체의 동일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꿀통에서 일하는 나)



2025. 12. 13.




문장 출처 - Ubermensch의 브런치스토리 괄호 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