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by 영진

에이스의 제안으로 그때부터 같이 먹고 자며 쿠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열흘 넘게 동행하게 되었다. 그의 배려 덕분에 동행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여행 일정이나 방식에 맞추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것이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난다거나 일몰을 보기 위해 저녁마다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는 여행은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에이스가 그랬던 이유는 사진작가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땐가 에이스가 자신이 찍은 사진을 ‘포토샵’을 이용해서 보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에게 물었다.

“잘 찍은 사진은 어떤 사진이야? 어떤 기준이란 게 있어?”

그 물음은 사진을 보정한다는 건 사진의 원본을 바꾼다는 점에서 찍은 사진과 다른 사진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나의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게 보정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찍은 사진과 관계없이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냐, 사진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면 사진을 찍는 행위, 그것도 잘 찍으려는 노력은 큰 의미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위 물음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에이스의 대답은 ‘보정’은 사진의 원본을 바꾸는 게 아니라 조금 보완하는 것이고, 보정 작업까지가 자신이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잘 찍은 사진은 ‘내가 찍고 싶었던 것을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나의 물음들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잘 찍었다는 ‘기준’은 나에게 있는 거야? 나의 기준에 부합하면(만족하면) 잘 찍은 사진인 거야? 그렇다면, 잘 찍은 사진의 객관적인 기준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거야? 잘 찍었다고 상을 주기도 하잖아?”

“잘 찍은 사진의 기준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고, 객관적인 기준은 타인에게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에이스의 답이었다.



-하영진, '잘 찍은 사진', <도시의 무지개> 62-63쪽.




도시의 무지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