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포스트 The Post] 읽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The Post)’는 ‘진실을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언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든 언론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아는 이들에게, 그것이야말로 진실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언론이 ‘진실을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렇지만 언론이 마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그 진실이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의 이익과 관련된 것인 경우에 그렇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일반인이나 연예인과 관련된 진실은 열심히 알리면서도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과 관련된 진실은 국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데도 알릴지 말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 처한 현실인 것이다.
영화 ‘더 포스트’의 신문사 ‘더 포스트’ 역시 진실 앞에서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1971년 베트남전쟁 시절.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기까지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행한 거짓을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정치권력(통치자)과 자본권력(투자자)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아니 그들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언론 ‘더 포스트’가 처한 현실이었다.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신문사의 존폐를 결정할 수도 있는 진실 앞에서 운명의 순간을 맞은 ‘더 포스트’. 외면하면 그만 아닌가라는, 국가에게도 신문사에게도 투자자에게도 이로울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것은 진실을 알려야 하는 것이 언론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을 외면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더 포스트’는 진실을 선택했다. ‘더 포스트’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과 국민의 중간에 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을 밝히는 진실한 언론의 길을 택한 것이다. ‘발행의 자유는 발행할 때 지켜지는 것’이라며 진실이 담긴 신문을 발행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 했던 편집장 벤, 그리고 발행의 최종 결정권자였던 발행인 캐서린에게 재판정은 ‘언론은 통치자가 아니라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판결로 ‘더 포스트’의 손을 들어준다.
미국정부의 거짓에 대한 ‘더 포스트’의 폭로는 언론사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더 포스트’의 편집장 벤과 발행인 캐서린이 대단해 보이는 이유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압력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용기는 낼 수 있다. 미국정부의 편에서 국민들을 기만하고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 또한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발행인 캐서린의 결정은 진실을 알려야 하는 언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사실이, 아니 거짓이 거짓임을, 미국 정부가 행한 거짓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정부의 거짓은 베트남에게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자존심 때문에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는 전쟁을 위해 미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냈던 사실을 정당화하는 거짓이라는 점에서 위험한 것이었다.
재판정이 밝힌 언론이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러할 것이다.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권력이 행한 국민들을 기만하는 거짓을 밝혀낼 때 언론은 국민들을 살리는 ‘산소’가 된다는 것. 진실이 곧 국민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
언론이 밝히지 못하는 진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언론이 모든 진실을 밝혀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국민들은 국가권력이나 자본권력과 같은 권력자들이 국민들을 기만함으로써 국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거짓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게 ‘더 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의 말처럼 언론이 ‘역사의 초고’를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더 포스트’에게 박수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2018.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