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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ug 15. 2023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읽기

올리버가 사랑을 결심한 듯 엘리오에게 쪽지를 남긴다. <자정에 보자>. 드디어 올리버와 엘리오가 만났다.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처음 사랑을 고백했을 때 올리버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올리버가 엘리오를 그때는 사랑하지 않았거나 자신의 마음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거나 동성(同性)이라는 사실 때문에 망설였거나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었거나. 아니면 그 모두였거나.


그날 자정에 만난 고백에서 엘리오가 처음 사랑을 느낀 그 순간 올리버도 이미 사랑을 느꼈다고 했으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올리버는 다른 이유 때문에 엘리오와의 사랑을 망설였다고 할 수 있겠다. 올리버가 망설였다는 사실보다 그들이 드디어 만났고 사랑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처음부터 사랑이었다면 왜 올리버는 사랑을 나누고 예정했다는 듯 엘리오를 떠났을까. 올리버가 망설인 이유도 그의 사랑도 궁금해졌다.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은 이탈리아 북부지방의 눈부시게 찬란한 풍경만큼이나 맑고 싱그러운 열일곱 소년 엘리오의 스물넷 청년 올리버와의 (첫) 사랑을 그리고 있다. 엘리오가 느꼈던, 혹은 누구든 한 번쯤 느낄만한 사랑의 떨림과 설렘, 그리고 세상 모두를 가진 후의 아픔까지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주었다. 소년 엘리오와 함께한 이들의 평범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특별했을 사랑 속에서 청년 올리버와 엘리오의 아버지 펄먼이 보여준 사랑은 평범하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그 두 사람은 슬픔이 슬픔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일 수 있는, 현실이 현실만이 아니라 내일의 ‘기대’ 일 수 있는 이유를 보여주었다.


사랑을 떠나보낸 슬픔에 잠긴 아들에게 아버지 펄먼은 자신의 말처럼 다른 부모들과 달랐다. 동성(同性)과 사랑에 빠진 아들을 지켜봐 주었고 ‘우정 이상’이라는 말로 그들의 관계를 인정해 주었다. 아버지는 실연의 아픔으로 인해 무엇도 느끼지 않으려는 어리석은 낭비를 하지 말라며, 오히려 그가 그임을 네가 너임을 서로 알아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랑의 기쁨을 아픔과 함께 간직하라고,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럼에도 엘리오에게 당장 필요한 건 스스로 견뎌야 할 ‘시간’ 일 것이다. 아버지의 애정 어린 말들과 함께.


그해 여름,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그곳 그 사람들 속에서 유독 관심이 갔던 것은 올리버의 사랑이다. 올리버는 엘리오를 사랑했을까, 아니 어떤 사랑이었을까.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불러줄게.’ 올리버의 사랑의 속삭임은 달콤했다. 그렇게 그는 엘리오를 사랑했고 사랑을 나누었지만 동성애라는 사회의 편견을 의식했을 수도 있고 영화 마지막에 결혼 소식을 알려오듯 이미 약혼녀가 있어서 엘리오와의 사랑을 망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망설임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엘리오와의 관계에 충실했다.


만일 올리버가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하고 가정을 해 보지만,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해 줄 수도 있을까라는 의문도 가져보지만,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만큼 올리버는 엘리오를 사랑했던 것이고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후회하지 않을 사랑을 한 것이다. 그것이 올리버의 사랑일 것이다. 엘리오에게 올리버의 사랑이 이기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엘리오 역시 자신이 바라는 사랑을 했으니 이제 사랑의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몸에 새기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 내일의 기대를 키워 줄 수 있도록.


2018.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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