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의 사고방식을 정통 맑스주의 쪽에서는 수정주의 내지는 기회주의로 몰아갈 수도 있고, 거꾸로 포스트 모던 쪽에서는 여전히 개념적 사유 틀에 얽매여 있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도르노는 그 양쪽 모두에 대해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논리를 펴고 있다.
그때 핵심이 모순이다. 마오쩌둥 같으면 거의 모든 것을 모순에 근거해서 설명한다. 아도르노는 모순도 제일 원리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모순이 중요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사유 방식에 불가피한 면이 있고 사유 방식만이 아니라 현실 자체에서 그런 모순 문제가 근본적으로 발판이 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위해서 사유 방식 차원과 현실 차원에서 모두 의미 있어서 모순이 중심 개념이라는 건 인정하는데 모순으로 모든 걸 끌고 가는 건 또 아니라고 본다. 또 모순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포스트 모던 쪽의 반발이 있다, 그쪽은 아무래도 ‘차이’다. 다양한 차이들이 있을 뿐인데 왜 모순으로 자꾸 몰아가냐 한다. 이에 대해서 아도르노는 사유가 끊임없이 뭔가를 따라가면서 그냥 나타나는 대로 계속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변증법이 아니라고 본다.
일정하게 규율을 부여하려는 것인데 사유 규율을 찾는 것인데 그때 사유 규율이라는 것이 그 대상에 무리하게 폭력적으로 하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그건 불가피한 면이 있다. 아무 규율 없이 사유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정반합이니 뭐니 이런 틀을 완전히 버리는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사유가 대상 자체에 그냥 자신을 그대로 맡기는 것이기도 하다.
-하영진, '모순이 중심이다', <도시의 무지개> 3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