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슬픔의 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른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이 그 강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다.
예술가는 볼 수 있는 자다. 그의 눈은 강의 흐름을 본다.
예술가는 들을 수 있는 자다.
그의 귀는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하여 예술가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사람들을
보이게 하고 들을 수 있게 하는 자다.
[정찬, 슬픔의 노래]
22
결국 자본이라는 괴물은 생명계의 순환 고리를 파괴함으로써
신성을 삼키는 새로운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해.
아우슈비츠가 신성의 찬탈을 짧은 시간과 한정된 공간 속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자본은 전 세계적으로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신성의 삶 속으로 칼을 집어넣고 있지.
아직도 신성은 우리 주위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으니까.
나는 그것을 신성한 숲이라 부르지.
우리가 그 숲을 갈망하는 한 숲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어.
물질화되지 않은 꿈과 영혼은 신성한 숲에 끊임없이 에너지를 불어넣고
신성한 숲은 다시 우리에게 맑은 산소를 공급한다면,
누가 아나? 신성한 숲이 자본의 아귀적 욕망을 이겨낼는지.
[정찬, 슬픔의 노래]
218
파리에 백 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소박한
빵집이 있다. 이 집은 바게트가 아주 유명한
집인데 빵맛의 비결은 특별한 게 없다고 하지만
빵반죽을 할 때, 그걸 조금 떼어서 남겨둔 다음,
다음번 반죽을 할 때 합치는 것이다.
(한번 빚은 반죽 덩어리를 모두 다 오븐에
굽지를 않고 반죽의 일부를 남겨 다음번 바게트를
반죽할 때 섞는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백 년 된 기억이 조금씩 끊임없이 섞이면서
빵 맛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거란 이야기가 된다.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24]
220
어떤 카페가 좋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카페 기둥에 흰색 페인트를,
화장실 문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놓은 게 마음에
들었던 거다. 사실 그 색이 좋아 카페의 분위기가
좋고 심지어 커피 맛도, 주인장의 얼굴까지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부분들을 쌓아가는 것이다.
고로 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이 무슨 색인지
알고 싶다는 말이며 그 색깔을 나에게 조금이나마
나눠달라는 말이다. 그 색에 섞이겠다는 말이다.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29]
2025.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