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가 좋아하는 개념 중 하나가 ‘모델’이다. 자신의 주장은 진리니까 받아 적어서 외워라가 아니고. 내가 이렇게 사고를 하니까 이걸 모델 삼아서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변증법적 인식은 기존의 인식에다 새로운 빛을 쪼인다는 것이다. 새로운 빛을 쪼여서 그 과거의 인식이 새롭게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다. 진리를 딱 고착시키려고 하는 걸 어떻게 피할 것이냐 했을 때, 이것은 하나의 모델이니까 이걸 통해서 여러분들도 스스로 해보라는 것이다.
들뢰즈가 기존 철학에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기존 철학들이 공식에 맞춰서 틀을 딱 짜가지고 사고를 안 한다는 것이다. 사고의 생산성이 없다는 것이다. 개념 가지고 뭘 하는 것이 대부분 그렇다는 것이다.
개념틀들 가지고 그걸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반복해서 쓸 뿐이라는 것이다. 그걸 놓고서 근본적으로 따지는 것들을 너무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런 취지는 아도르노하고 비슷하다. 공식들에 맞춰서 외우고 안다고 생각하고 끝내고 이런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사고를 다시 하라는 것이다.
-하영진, '새롭게 빛을 발하게 하는', <도시의 무지개> 249-250쪽.
아도르노의 주장을 ’모델‘로 삼을지 말지는 독자의 몫이다. 그렇게 스스로 판단하도록 열어두는 것이 아도르노의 주된 주장이기도 하다. 아도르노의 중요한 주장 중 하나가 ’동일성 사유‘를 경계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념을 통해서 사유를 하되 개념과 대상을 동일시하지 말라며, 개념으로 파악되지 않은/못한 비동일자가 사태의 본질일 수도 있다며, 사태는 무궁무진하니 ’사태 자체‘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사태 자체‘에 충실하기 위한 여러 주장들 중에서 자신의 것도 그 중 하나로 참고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자신이 유일한 모델이니 참고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여러 모델 중 하나이니 참고’만‘ 하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무엇이 진짜인가. 누가 진짜 모델인가. 중한 것은 사태 자체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짜는 드러날 뿐이다. 그러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 일 것이다.
2025.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