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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Oct 11. 2023

가을 우체국 앞에서

1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을이면 나도 모르게 찾아드는 노래들이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이제 계절을 느끼는 것도 호사일까 의식하는 사이 어느새 노래 가락이 가을바람에 실려 와 귀가를 간지럽힌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날 저물도록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그대를 생각하고 있으니 김광석이 찾아든다.          



2     


나의 어릴 적 내 꿈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랑/ 네가 그것들과 손잡고/ 고요한 달빛으로 내게 오면/ 내 여린 마음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을/ 너에게 꺾어줄게(김광석, ‘너에게’)     


가을만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밤낮으로 찾아드는 김광석은 혼자 활동하기 전에 ‘동물원’과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여럿이 함께 활동을 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은 민중가요 전성시대(?)였다. ‘노찾사’와 ‘꽃다지’를 비롯해 많은 노래패가 있었고 그중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그 이름도 아름다운 ‘소리 평등’이라는 노래패도 있었다.      


노래패 활동을 하던 한 친구와 예술성과 대중성에 대해 고민하던 시간도 있었다. 김광석이나 민중가요 때문일 수도 있었겠지만 예술과 대중 모두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 예술의 대중화와 대중의 예술화는 여전한 관심거리다.           



3     


기타 하나 둘러매고 하모니카 입에 물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고 노래하던 안치환도 있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댈 위해 노래하겠어’(‘내가 만일’) 가을이라서 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이 찾아든다. 안치환의 3집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다.     


‘당신의 깊이를 알기 위해 당신의 핏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류시화 시, ‘소금인형’), ‘새벽 시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다’(박노해 시, ‘노동의 새벽’),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김남주 시, ‘자유’), ‘보내는 내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 위로 실려 갈 수 있을까 귀뚜루루루 귀뚜루루루’(나희덕 시, ‘귀뚜라미’)      


정호승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우리가 어느 별에서’도 그중 하나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는가/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했기에/ 이토록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나/ 꽃은 시들고 해마저 지는데/ 저문 바닷가에 홀로 어두움 밝히는 그대/ 그대와 나 그대와 나/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열지니(정호승 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     


2021, 10. 20.          




지난 글들은 이제 그만 꺼내 놓으려고 했으나 그래도 가을이라서 노래하게 된다. 가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해가 갈수록 짧아져만 가는 가을이 아쉽기만하다. 가을을 노래하고 있을 만한 현실도 아니지만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노랫말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마음에 와닿아 곱씹게 된다.      


202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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