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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Oct 06. 2023

자신과의 싸움

나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맞다. 싸움도 경쟁도 피하고 싶고 갈등은 불편하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운 좋게도 미움보다는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러기 위해서 노력도 했다고 여긴다. 앞으로도 그렇게 운 좋게 노력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렇다고 싸움도, 경쟁도, 갈등도 하지 않고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이 되어도 가급적 안 그러고 싶지만 나 역시 누구 못지않게 잘 싸우고, 경쟁하고, 갈등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하면서 살았던 것도 맞다.


요즘의 나는 ‘싸우거나’, ‘피하거나’, ‘불편해하거나’보다 좀 더 ‘수용’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흐름에 몸을 맡기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예전에도 ‘흐르는 강물처럼’ 살려는 것처럼 보였는지 지인들에게 너무 흐르기만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적도 있긴 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역시 사람은 잘 안 변하나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는 역시 싸움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오랜 나 자신과의 싸움 덕분인지 요즘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조금 편해졌고 즐기기도 한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편임에도 ‘자본 권력’과의 싸움에는 관심을 놓을 수가 없다. ‘자본권력과의 싸움’의 의미는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적대적 대립 관계가 사라진 상태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일하는 노동자들이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민주적인 사회’, ‘평등한 사회’에 대한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 


‘자본 권력’은 자본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대 자본가들과 카르텔을 형성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 공동체를 파괴하는 모든 권력을 의미한다. 자본 권력들을 내 편으로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폭력적으로 물리치는 것만이 싸움은 아닐 것이다. 왜 싸우는지 싸움의 목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잘 싸워야 하는 것이다.


어디서든 어떻게든 싸우고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여긴다. 잘 싸우겠다면 어떻게든 잘 싸울 것이고, 싸움의 방식이 유일하다면 유일한 방식으로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양하게 싸워야 한다면 다양하게 싸우면 될 것이고 당장 필요한 싸움이라면 해야 할 것이고, 필요 없는 싸움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진보적’이라면 그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지만, 그 싸움을 한다고 진보적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원론’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삶’이라고 여긴다.


잘 싸우고 있는지, 싸움의 목적을 망각하고 있지 않은지, 자기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물어보며 나아갈 수 있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늘 즐겁다. 



202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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