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방을 쓴다. 당장 가능한 가장 가까이 느껴지는 해방 세상이라고 밝힌 “‘재벌부터 노숙인까지’ 전인구가 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며 정규직인 세상”을 정희진 같은 여성학자이자 평화학자께서 주장하지만 한국 사회의 국가권력과 정치 권력의 성격과 의지로는 당장 아니라 영원히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기득권 논리와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다는 냉소주의와 패배주의가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늘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다. 그들 권력의 주관적인 성격과 의지로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객관적인 조건은 가능성에 가깝기 때문에 정희진 학자의 주장을 지지하며 그와 같은 해방 세상의 충분조건을 위해 해방의 필요조건들을 열심히 써 나가야겠다.
경제 양극화와 소외를 넘을 소유 방식,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변증법적 인식, 대중을 사로잡을 이론적 무기,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의 단결.
해방을 쓰기 위해 나는 위의 주제들을 염두에 두면서 ‘사람, 자연, 책, 여행, 문학, 예술’과의 만남 속에서 현실을 읽고 바라는 현실을 쓴다. 나는 그렇게 해방을 써나간다. 글과 함께 나의 해방을 짓는다.
ㅣ모두가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
내 능력껏 사는 것인데 왜 나누라고 하는 것인가. 정당하게 노력해서 얻은 것인데 나누라니 억울할 것이다. 불편부당함에 분노마저 치밀 것이다. 세상은 공정한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세상이 공정한 것처럼 거짓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공정한 구조는 심화되고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 것을 나누라고 하는 그런 불공정한 구조에서는 불평불만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구조의 문제는 모두가 스스로 자초한 결과이니 억울할 것도 없다. 나누기 싫으면 나누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나누지 않고도 모두가 각자의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살 수 있는 구조 말이다.
공정하지 못한 구조에서는 ‘괜찮아, 패배할 수도 있지’가 아니라, ‘넌 패배자야’라는 열패감을 갖게 만들고 자꾸 패하면 승리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부패하거나 아예 승부를 포기하게 된다. 공정한 경쟁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오직 승리하는 것만이 목적이 된다. 그런 공정하지 않은 구조에서는 나누자는 말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공정하게 경쟁해서 패배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패배를 인정할 수 없으니 억울하고 그래서 나누자는 것이다. 그런데 승자는 승리했는데 나누라니 더 억울하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모두가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정을 말하자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구조부터 만드는 게 우선이겠다.
ㅣ좋은 삶
가을인 줄 알았는데 겨울이라니. 봄인줄 알았는데 이내 뜨거운 여름이 왔듯이 뜨거움의 정도도 길이도 점점 더 강해지고 길어지고 있듯이 가을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것에 이제 적응해야 할 것 같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는 사기라는 정치인들의 음모론에 대해서도 이미 적응하고 있다. 그들 정치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자신들의 기득 권력 유지를 위한 생각 뿐이기 때문이다. 기후재난으로 마침내 지구가 종말을 맞는 그 순간까지도 그들은 음모론을 외치며 권력에 목 매달고 있을 게 뻔하다.
나는 좋은 것들을 생각하고 좋은 것들을 감각 하는 ‘좋은 삶’을 살아가려 한다. 나에게 안 좋은 것들은 멀리하려 한다. ‘좋은 삶’이라는 것이 워낙 주관적이고 관념적이다 보니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객관적인 삶의 조건을 바꾸지 않는 이상 ‘좋은 삶’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객관적이지만 관념적인 사고들도 멀리할 뿐이다.
나로부터 내 주변을 좋은 삶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나에게 좋은 삶이다.
기후 위기로 지구의 환경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하는 것이 좋은 삶이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착취하고 수탈하다 더이상 이윤을 낳지 못하는 것들은 쓸모없는 것으로 내다 버리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연구하며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좋은 삶이다.
전쟁으로 굶주리다 구호 물품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마저 총격을 가하는 ‘가자 제노사이드’ 이후에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더 이상 환멸조차 느끼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그럼에도 그럴수록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이들을 가까이하는 것이 나에게 좋은 삶이다.
안 좋은 것들을 멀리한다는 것이 그들을 피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안 좋은 것들을 통과하지 않고는 좋은 삶은 불가능하다. 해서, 좋은 것들과 함께 좋은 삶을 통해 안 좋은 것들을 좋은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도 좋은 삶이다.
가을인 줄 알았는데 겨울이라니. 몸도 마음도 좋지 않지만 그 안 좋은 변화 속에서도 좋은 것들을 찾아 누리려 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좋은 삶’이다.
ㅣ호치민과 리더십
호치민과 더불어 베트남 인민들이 프랑스와 미국의 식민주의를 타도했다는 것은 대단해 보인다. 그 중심에는 호치민의 리더십이 있다. 호치민의 글에서 보이는 호치민 리더십의 위대함은 베트남 인민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 베트남인민들에 대한 무한 긍정과 신뢰, 승리에 대한 확신, 자신을 포함한 지도부의 모범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치민이 자신과 지도부에게 요구했던 삶의 가치들은 “근검절약, 근면성실, 관료주의 및 부정부패 타파, 규율에 대한 엄격성,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중, 허례의식⋅주지주의⋅형식주의 타파, 애국심과 국제주의의 연결, 자기개조, 평가와 자기비판”등이 있는데 그리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또한 구체적인 시대와 상황에 따라 더 높게 평가되거나 더 낮게 평가될 수도 있는 가치들이다. 하지만 평범해 보이고 누구나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것들이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알고 있지만 실천하면서 살기는 쉽지 않은 것들이다. 자신이 알고 인민들에게 요구했던 것들을 스스로의 삶에서 실천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인민들에게 신뢰를 주었을 것이다.
말과 행동, 생각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 또한 지도자의 덕목으로서 흔히 얘기되는 것이지만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호치민 리더십의 위대함은 그 쉽지 않은 일을 실천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리더십은 그 당시의 베트남 민족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대에도 민족과 계급의 해방을 위해서 지도부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여긴다.
무엇보다 관료들과 지도부들 내에 존재했을 시기, 이기심, 알력 다툼을 잠재우고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를 막았다는 것이야말로 인민들을 결집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돋보이는 리더십이라고 여긴다.
호치민 리더십이 인민들의 일상적인 삶과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 인민들과 함께 삶을 살아내는 리더십은 지역과 시대를 떠나 높이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권력은 더욱 더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유연하게 전 세계 인민들의 삶 속에 파고들어 식민화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2026.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