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_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2)

by 영진

좋은 글이라는 것은 우리를 항상 어딘가로 데려다 놓습니다. 좋은 대화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음악도 우리를 잠시 여기에 있지 않게 하고 어딘가로 데려다 놓아요. 저는 두리안 냄새를 맡으면 스물세 살 말레이시아에 체류할 때의 기억이 나거든요. 두리안 냄새가 저를 그곳에 데려다 놓는 거예요.

좋은 글이 우리를 지금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데려다(358) 놓는다고 했잖아요. 근데 글이라는 건 단서와 도구일 뿐이지, 그 어딘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묘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혜순 시인이 무당 얘기를 하잖아요. 여러분 중에서도 어쩌면 환각을 경험해 본 분이 있을 수도 있고 귀신을 본 분도 있을 수 있겠죠. 영적인 것, 귀신, 유령 이런 것들을 저는 다른 게 아니라 우리를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잠시 데려가는 어떤 것이라고 느껴요.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죽었어도 친구는 지금 내 안에 있잖아요. 그에 대해서 나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그가 준 유산들로 살아간단 말이예요. 그건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게 있다는 것을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움직이는 것이 있어요. 우정도 마찬가지고요. 사랑, 믿음 이런 것들이 모두 그렇지요.

글쓰기를 통해서 그 어딘가로 가는 사람은 독자 스스로입니다. 독자는 작가가 보라고 한 걸 보지 않거든요. 책을 읽다가 가만히 멈춰 서서 어떤 생각을 하게 돼요. 어딘가로 가게된단 말이죠. 작가는 어딘가로 가도록 도와줄 뿐이지 독자가 무엇을 보고 경험할지를 결정해 주지 않아요. 그 경험을 결정하는 사람은 독자 자신입니다. 작가는 거울처럼 독자가 스스로 보게 될 것을 보도록 도와줄 뿐인 것이죠.(359)



ㅣ출처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하미나 지음, 물결점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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