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진 Nov 04. 2023

내가 살아가는 삶은

삶이 세상이 거짓이나 해악 투성이어서 진실이나 선함이 불편하거나 심지어 위선으로까지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삶이 세상이 늘 진실되거나 선하지만은 않기 때문에, 진실되거나 선하게만 살고 싶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삶도 세상도 늘 거짓이나 해악에 얽힌 채 살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실재하는 진실 때문에 나는 안 그런데라며 억울해하기도 하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위안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도 모르게 거짓과 해악의 세상에 동조하는 것 같은 죄스러움에 진실되고 선하게만 살아가는 것만 같은 사람들이 불편하거나 위선적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혹은, 진실되고 선하기만 한 세상은 오히려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 세상모르는 아이들은 모르겠으나 세상 좀 살아본 어른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그런 것 같다. 우리네 삶은 세상은 거짓과 해악만 있는 것도, 진실과 선함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짓과 해악이 진실과 선함을 이기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는 것이 내버려 두어지지도 않는 것이 삶이고 세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삶은 세상은 완전할 수 없기에 완전하려 하고, 다다를 수 없는 곳에 다다르려 하고, 가질 수 없기에 가지려고 하고, 할 수 없는 것을 하려 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려 하는, 그런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위선과 위악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시기와 질투와 음모와 배신과 복수와 전쟁이야말로 살아 있음을 증거 하는 인간적인 것이라고, 그것이 인간적인 사랑을 진실을 선함을 이루는 동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삶은 세상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선택의 결과가 49:51 세상이야말로, 진실되지만도 거짓되지만도, 선하지만도 악하지만도 않을  있는, 참과 거짓의, 선과 악의  간극이 최소화된 그런 세상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아니더라도, 신이 아닌 인간이 누릴  있는 최선의 상태가 아니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삶은 늘 그 어느 쪽도 아닌 조금 모자라는 쪽, 조금 약한 쪽을 선택하는 삶일 수도 있겠다. 그것이 나에게는 사랑이고 진실이고 선함일 수도 있겠다. 그마저도 누군가에게는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위악적이지 못한 심성의 표현, 위악적이고는 싶지 않은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2023. 11. 4.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