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포기하지 않을 만큼
간절한가
바라는 결말을 상상하며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나의 경우, 포기 잘하는 편이다. 여차하면 포기한다. 삶에서 ‘끈질김’은 진리라고 여기지만 ‘끈질긴’ 편은 아니다. 다만, 비슷한 의미로 ‘지속적’ 이려고는 한다. ‘지속적’도 진리라고 여긴다.
‘지속적’인 것이 포기하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포기해도 그만인 길이기도 하다. 끈질기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그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데, 살면서 그토록 간절했던 적이 있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간절하다면 끈질기게 집착할 텐데 끈질긴 보다 지속적이려고 했던 것 같다. 둘은 비슷한 듯 다르다. 지속적이라는 말에서는 끈질김의 집착이나 강한 구속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지속적이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당장의 결과를 쫓기보다는 멀리 보고 조금씩 천천히 반복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끈질김이 결과를 중요히 여긴 다면 지속적은 과정을 중요시한다고 여긴다.
지속적은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그 자체가 과정이면서 결과이기도 하다. 지속적으로 해 왔다는 것은 앞으로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포기할 가능성도 적다.
간절해서 지속적이게 되기도 하지만 지속적일 수 있어서 간절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이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조금씩 천천히 하는 것은 간절하지 않아도 할 수 있고 그러니 지속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하게 되니 잘하게 되기도 하고 그러니 재미나 요령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이 또한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일상적인 삶 속에 스며들어 습관과 같은 것이 된다.
나는 그런 편이다. 그렇게 살고 있는 편이다. 이런 생각으로 오래 지속적으로 살다 보니 지속적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지속해 와서 익숙한 일은 재밌게 능숙하게 할 것이고 새롭게 시작하게 되는 일은 미리 준비하여 조금씩 천천히 지속적으로 해 나간다.
여차하면 포기할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지속적이고 싶을 만큼 간절하지 않은 것일 테니 기쁘게 포기한다.
결말을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상상하길 좋아한다. 그런 상상을 함께 하며 웃고 떠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현실에, 실현 가능성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 결말이 어찌 되든 상관없이 과정은 즐거우니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데는 진심이려고 한다. ‘최선’도 삶의 진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간혹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지 잘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으려는 최선은 다하려고 한다.
2023.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