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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원을 좋아하고, 도서관을 좋아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공원도, 도서관도, 책 읽기도, 글쓰기도, 산책도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묻는다. 왜에?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을 받으니 문득 나도 궁금해진다. 나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어릴 적 집 근처에 공원이 있었고, 공원과 더불어 도서관도 있었고, 숲도 있었고, 놀이동산도 있었고, 수영장도 있었고, 공연장이나 미술관도 있었던 때문인 듯싶다. 그곳이 나의 생활공간이었던 셈이다. 어릴 적 생활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 그렇게 생활해 왔고 생활한다. 그것 말고도 어떻게 생활하는지 이야기할 거리는 많지만 대체로 ‘책, 장소, 사람, 예술, 자연’과 만나며 생활한다. 나는 그렇게 만나며 생활하는 것을 ‘여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일상의 여행’을 즐긴다. 일상을 떠나는 여행도 ‘일상 같은 여행’을 즐긴다. 유명 관광 명소를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그곳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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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나는 독일의 베를린에서 5개월가량 생활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생활을 했다. 나는 내가 살던 도시에서처럼 ‘책, 장소, 사람, 예술, 자연’을 그곳에서도 만나는 생활 같은 여행을 했다.
그리고 마우어파크(mauerpark)에서 ‘간고등어’를 만났다.
작년이었나. <비긴 어게인>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반가웠던 마우어파크는 베를린의 일요일 벼룩시장(flea market)으로 유명한 공원이다. 우리말로 벽(mauer) 공원(park)이다. 베를린 장벽이 남긴 흔적 중 하나의 장소인 것이다.
베를린 장벽의 흔적 중에서 대표적인 장소는 ‘역사’의 흔적을 예술과 함께 보존하고 있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East Side Gallery’ 일 것이다. 화가들의 그림으로 채워진 장벽은 ‘통일 (혹은 연결)’과 ‘평화’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갤러리에는 화가들의 그림만 아니라 ‘나의, 너의, 우리의 그림’도 있다. 나의 낙서 같은 그림이 아직 그 벽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동서독을 가르던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은 이념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의 가수들이 독일의 공원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 국경을 넘어선 인류의 연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 예술의 연결로, 평화의 울림으로 자본이 세워 놓은 탐욕의 전쟁과 수탈(자연)과 착취(노동력)와 폭력(차별)과 소외(관계)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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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어파크에 방문했던 그날도 공연이 있었다. 공연장은 장벽의 흔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흙더미와 풀더미
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었다. 그들 더미 위의 관객석 아래 중앙에 무대가 있다.
그날의 공연은 배우의 1인극이었고 벼룩시장을 찾은 방문객들을 흥겹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배우의 능숙하고도 익살스러운 연기와 함께 관객들은 하나 되어 웃고 떠들고 마시며 역사의 흔적 속에서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역사의 아픈 흔적을 잊은 채 즐거웠던 그날의 그 시간은 오히려 지금껏 잊히지 않고 기억되고 있다. ‘장벽공원’이라는 ‘장소’를 통해서, 관객들과 흥겨워했던 무대와 함께, 그곳에서 구입했던 한 권의 중고서적과 함께, ‘아픔’의 역사와 ‘작별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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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픔’을 직시하고 대면할 용기를 갖기 위해, 지금도 존재하는 자본이 세운 장벽을 허물기 위해 더 많은 만남의 행위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 아픔과 작별하기 위해서 말이다. 장소, 그림, 음악, 영화, 책, 사람, 사건과의 만남을 통한 행위들일 것이다.
생활 속 그 만남들을 통해 우리는 작별하지 않으며 작별하는 법을 익혀간다. 그해 그곳의 역사와 지금 이곳의 역사가 만나 연결되고 연결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이곳의 아픔의 역사와 작별하지 않으며 작별하는 연습을 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베를린 장벽이 남긴 흔적, 마우어파크를 간고등어와 함께 작별하지 않으며 작별한다. 기억하며 잊어 간다. 아픔과 작별하며 작별하지 않으려 벽을 허물며 생활한다.
내가 좋아하는 간고등어로 인해 그곳의 아픔, 이곳의 아픔과 작별하지 않으며 작별하고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매일 아픔과 작별하며 작별하지 않을 수 있다.
2023. 11. 24.
<대문사진> 독일 베를린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East side gallery
마우어파크에서 먹은 간고등어와 1인극 장면을 담은 사진 속 기억이 아직 제법 또렷이 남아 있지만 사진을 분실해 버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사진을 대문 사진으로 올려 둡니다. 그곳의 사진도 몇 장 없네요.
이웃 작가님의 글 두 편도 올려 둡니다. 이 글의 내용과 직접 연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좋아하는 글이라서, 이 글 곁에 두고 싶어서 올려 둡니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슬픈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