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읽기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사형을 선고받은 병사, 몸에다 죄명(罪名)을 새기며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사형기계,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장교, 유형지는 어디이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그보다 궁금한 것은 그런 유형지의 상태에 대한 판단을 위해 초대된 탐험가의 태도이다.
새로 부임한 사령관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충분히 장교를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령관은 제삼자의 입장일 수 있는 탐험가를 초대하여 자신의 결정에 객관성을 더 하려고 한다. 하지만 탐험가는 사령관에게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심지어 함께 그 유형지를 떠나고 싶어 하는 시민들을 뿌리치고 혼자 떠나버린다.
장교에게 병사(시민)는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런 장교를 대하는 사령관과 탐험가의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책임하고 방관적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장교와 사령관 둘 다 탐험가에게 자신을 편들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탐험가가 해야 할 일은 누구를 편들기 이전에 사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다. 그 판단이 어느 한쪽에 유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탐험가는 자신의 임무를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법(法)을 집행하는 일은 사령관의 몫이고 자신이 책임지지도 못할 것이면서 시민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다.
세상에 하찮은 존재가 있을까. 해서 하찮은 존재는 하찮게 대우받아도 되는 것일까. 그 어떤 존재가 그 어떤 존재에 비해 어떻게 하찮다는 것일까. 감히 누가 어떻게 사람을 사람과 비교하여 낫고 못함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고 권력 없는 이들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과 그런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 인간은 하찮게 대우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지 않거나 저항은 하지만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저항하지 않는 이들은 하찮은 존재, 아니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면 무섭지 않을까.
자기와 다르면 틀린 것이라는 생각에서부터 600만 유태인 학살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제각각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같은 구석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비슷하거나 같아지려고 애쓰기도 한다.
하나 애초에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한다면 비슷하거나 같아서 좋은 상태에 이르기는 어렵다. 그저 다르게 살아가다 때로 서로 틀렸다며 싸울 뿐이다. 자신과 왜 다르냐며 같아지라고 강요할 것이다. 그럴수록 같아지기는커녕 더 멀어질 뿐이다. 그렇게 일상적인 폭력은 비일상적인 학살로 이어졌었다.
자신과 같기를 강요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유형지를 무책임하게 방관한다면 유형지는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유형지를 해소하기 위해 유형지에서 행해지는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유형지는 또한 반복될 것이다. 탐험가가 자신이 만들지 않은 사회 질서인 유형지에서 머물지 않거나 떠나거나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2018.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