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진 Nov 28. 2023

인정과 욕망(3)

‘인정’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인간은 관계적(의존적) 존재라는 사실 때문이다. ‘인정(사랑)’을 주고받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존재이기에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 어떻게 ‘인정(사랑)’을 주고받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하게 되는 것일 테다.      


‘핵개인화 시대’가 되었다고 예보하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핵개인화’라는 표현 이전에 ‘관계’를 파괴하는 ‘파편화’(게오르크 루카치)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 원인으로 질보다는 양을 중요시하는, 모든 것을 숫자로 환산하는 ‘수량화’, 이윤이 되는 모든 것의 '상품화’, 그에 따른 ‘규격화’와 ‘획일화’와 ‘서열화’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현상의 근원으로 오직 ‘이윤 증식’만을 위해 작동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말할 수도 있다.      


‘파편화’의 원인인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들도 있었고 여전히 있다. 그것이 참여민주주의든, 공동체주의든, 21세기 사회주의든 있다.      


그 노력 중에는 ‘인정(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에 대한 노력도 있다. 호네트의 ‘사랑과 협력’을 위한 ‘인정 투쟁’, ‘인정 망각’에 대한 윤리적인 환기, 권력 비판‘이 있고, 사회구성원임을 인정하는 ‘성원권’을 위한 ‘환대’도 있고, 물질적인 가치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중요히 여기며 ‘사회관계자본’을 쌓으려는 노력도 있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그를 다시 한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삶, 시간, 사람, 관계’를 소비하는 욕망이 아니라 그 모두를 충만하게 해주는 ‘에너지’로서 ‘삶 자체를 욕망하라’(니체) 거나,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한 부족함 없는 자기 자신을 ‘자체 보존’하라(스피노자) 거나, 그들 완전체들 사이의 흐름을 살피고 연결하려는(들뢰즈) 노력도 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사회적 완전함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거나 오히려 자기적 완전함에 빠지는 자기애(나르시시즘) 사이에서 파열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있다.(라깡)       


위의 ‘해석들’에 대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겠지만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의 시 몇 편으로 대신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꽃다발     


네가 준 꽃다발을 

외로운 지구 위에 걸어놓았다

나는 날마다 너를 만나러

꽃다발이 걸린 지구 위를

걸어서 간다      


    

2023. 11. 28.

매거진의 이전글 인정과 욕망(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