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의 <변증법 입문> 읽기
아도르노는 대상과 개념을 동일시함으로써 생겨나는 동일성 사유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 대표적으로 행정적 사유 또는 위상학적 사유를 비판한다. 대상을 어느 위치에 있는가만 알고 그것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사고. 위상학적 사유다.
동일성 사유의 극단이 위상학적 사유라고 본다. 행정적 사유도 구획만 딱딱 짓고 어디 서랍에다가 차례차례 넣어놓고, 도표 만들어 가지고 무슨 사회 무슨 사회해서 탁탁 나눠놓고 한다는 것이다.
모두 동일성 사유의 일면이다. 그것은 허위이기도 하고 폭력적이라고 비판한다. 대상 자체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안 하는 것이다. 변증법은 당연히 대상 자체에 다가가려고 한다. 본질을 향해서 끊임없이 다가가려고 하는 것이다. 딱 틀에다 맞추려고 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헤겔도 똑같다. 헤겔도 그런 류의 사고에 대해서는 굉장히 거부한다. 모든 형식주의나 도식주의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판했다. 한편으로 아도르노는 우리가 사고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라는, 그런 속성을 버릴 수가 없다고 본다.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이성이 돌아보면서 이게 착각이라든지 아니면 이거는 현재까지 일뿐이다라고 단정을 한다든지 해서 자기반성을 통해서 그걸 깨야 하는데. 안 깨고 그냥 틀에 맞추고 끝내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개념의 자기반성 능력이 인간한테는 있다고 보는 것이다. 칸트도 이미 그런 반성 능력을 전제로 했다. 칸트는 그런 범주 틀을 딱 짠다. 근데 헤겔은 그런 걸 깨버리는 거다.
여러분이 부딪히는 이 최고 수준의 모순, 즉 한편으로 변증법은 비동일성을 사유하는 시도 그러니까 사유로 소진되지 않는 대립적 계기들을 사유를 통해 받아들이려는 시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일성 철학으로서만, 즉 근본적인 의미에서 사유와 존재를 동일시하는 철학으로서만 가능하다는 이 모순이야말로 원래 헤겔식 관념변증법이 설정한 계획을 정식화해 준다.(번역본 26쪽)
최고 수준의 모순이라고 표현했는데 비동일성을 사고해야 되는데 그러니까 변증법은 끊임없이 사유하고 동일하지 않은 대상을 따라잡으려고 해야 하는데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이게 같다고 또 사고가 발전해서 최종 단계까지 가면 주체와 객체가 동일해진다는 동일성 철학이다.
그 두 가지 간의 모순이 헤겔 철학의 최고 모순이다. 헤겔이 여러 가지 모순들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중에 최고의 모순은 동일성 철학이라는 측면과 동시에 사고와 비동일자 간에 끊임없는 모순들을 따라잡는 사고 그래서 비동일성을 강조하는 사고다.
또 한편에서는. 그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 이게 헤겔 철학의 최고 모순이다. 이렇게 추정하는 것이다. 즉 "헤겔식의 사유는 헤겔의 용어로 말하자면 동일성을 비동일성과 통일시키겠다는 계획을 명백히 표명했다."(번역본 26쪽)
이런 표현들이 그냥 달랑 뚝 떨어져서 나오면 참 난해한 표현들이다.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통일, 무슨 말장난인가 이럴 수 있다. 그 의도는 이런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동일성 철학을 추구하는데 또 동일성을 확보한다고 자부하는데 끊임없이 또 비동일성을 놓고 따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모든 것을 사유 속에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매 순간 사유를 그 대상과 상이한 것으로 확인하려는 계획입니다. 이에 대해 여러분은 우선 그것이 언론의 자유이면서 검열이기도 하다고 사유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명백한 모순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즉, 한편으로 변증법은 다름 아니라 주체와 객체 사이의 대립, 사태와 방법 사이의 대립 인식과 무한한 절대자 사이의 대립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다시 통일시키고 이로써 이 대립을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번역본 26-27)
그런데 이에 대한 헤겔의 해답은 또 나는 지금 헤겔식 변증법 즉 관념 변증법에 대해서만 말하겠습니다. 유물변증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하겠는데 그것은 완전히 다른 구조를 지닙니다.(번역본 27쪽)
관념변증법은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이 완결된 폐쇄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유물변증법은 그냥 열려 있는 것이다.
관념변증법이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닫힌 통일, 즉 완결로서의 통일을 상정한다면, 유물변증법도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통일을 상정하지만, 그 통일은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 과정으로서의 결과인 열린 통일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이 글의 제목을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열린 통일’이라고 붙여 보았다.
2023. 12. 12.
*위 글은 아도르노의 <변증법 입문> 번역자(홍승용)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홍승용 역, 세창출판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