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변증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진 Dec 14. 2023

새롭게 빛을 발하게 하는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읽기

규정은 곧 부정이다. 유명한 스피노자의 명언이다. 규정, 부정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뭔가를 긍정하면 부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긍정은 표현되고 부정은 그림자처럼 숨겨놓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좋아하는 개념 중 하나가 ‘모델’이다. 자신의 주장은 진리니까 받아 적어서 외워라가 아니고. 내가 이렇게 사고를 하니까 이걸 모델 삼아서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변증법적 인식은 기존의 인식에다 새로운 빛을 쪼인다는 것이다. 새로운 빛을 쪼여서 그 과거의 인식이 새롭게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다. 진리를 딱 고착시키려고 하는 걸 어떻게 피할 것이냐 했을 때, 이것은 하나의 모델이니까 이걸 통해서 여러분들도 스스로 해보라는 것이다.     


들뢰즈가 기존 철학에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기존 철학들이 공식에 맞춰서 틀을 딱 짜가지고 사고를 안 한다는 것이다. 사고의 생산성이 없다는 것이다. 개념 가지고 뭘 하는 것이  대부분 그렇다는 것이다.      


개념틀들 가지고 그걸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반복해서 쓸 뿐이라는 것이다. 그걸 놓고서 근본적으로 따지는 것들을 너무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런 취지는 아도르노하고 비슷하다. 공식들에 맞춰서 외우고 안다고 생각하고 끝내고 이런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사고를 다시 하라는 것이다.     


변증법적 사유의 과제는 예컨대 하나의 개념이 지니는 어떤 규정들을 동일한 개념의 다른 규정들로 은밀히 대체하는 식으로 개념들을 가지고 곡예를 하는 것일 수 없습니다.(번역본 28쪽)      


변증법적 사유를 통해 어떤 하나의 정의를 버린다는 것은 다양한 정의들로 유희함으로써 야기되는 자의적 행위가 아니라 아무튼 그 이념상 개념이 사태와 부단히 대면하는 가운데 그러니까 개념의 내재 비판을 통해 또 그것을 무엇이라고 칭하든 개념 자체의 불충분함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바로 그 비동일성의 계기, 즉 개념과 사태의 불일치를 표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이때 개념이 경험하는 변화는 동시에 세계 철학의 의미에 비춰 볼 때 사태 자체의 변화이기도 합니다(번역본 28-29)      


개념이 변했는데 왜 사태가 변하는가, 사태에 대한 인식이 변한 것뿐이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개념의 변화라는 것이 사태의 본질이 a였다가 a플러스, b가 됐다고 하면 사태 자체가 변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인식만 확장됐을 뿐인가라는 물음이다.     


헤겔은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대상을 파악하게 되면 대상도 변한다. 그러면 다시 나도 변한다. 그래서 이게 타당한가 안 한가를 검증하는 척도도 달라진다. 이 삼자가 다 변하는 ‘불확정성 원리’가 그런 것이다.      


내가 관찰하는 대상 자체가 이미 관찰을 통해서 변화된다. 그럼 변했으니까 또 나도 변해야 한다. 그런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고 헤겔의 경우는 개념은 순전히 내가 지어낸 것만이 아니고 개념이 변한다는 것은 그 대상 자체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라고 본다.      


요즘 인류학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생물학자들이 확정적인 어떤 DNA 구조에 따라 개념적으로 여성, 남성을 구분하는데 그렇게 구분되는 것은 우리의 편리에 의해서 그런 것일 뿐이고, 어떤 a 여성이 아프리카에 있는 b 남성의 DNA 하고 너무 닮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 과학에서 남성, 여성 이렇게 갈랐던 것은 도식적 사고에 의해서 알려지는 것뿐이지, 지역적으로 전 인종을 놓고 봤을 때 흑인, 백인 이렇게 나누지만 DNA로 놓고 봤을 때는 지금 우리가 개념적으로 구분해서 쓰고 있는 그런 것들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범주를, 진리를 설명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어떤 시약을 쓰고 하면서 알아가는 과정에서 DNA 자체도 지금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가 이제 드디어 답을 찾았어. 하는 모든 답들이, 게놈 지도 발견됐다, 완성됐다, 하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비밀이 나올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2023. 12. 14.          



*위 글은 아도르노의 <변증법 입문> 번역자(홍승용)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홍승용 역, 세창출판사, 2015.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열린 통일 (brunch.co.kr)

진리는 타이밍이다 (brunch.co.kr)

매거진의 이전글 사태 자체에 대한 통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