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에 ‘문장들’이라는 글을 올리고 있다.
‘문장들’이라는 표현보다 ‘생각들’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문장’은 ‘생각’이 표현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장’에는 글쓴이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혹자는 문장이 아니라 ‘단어’ 하나에도 이미 글쓴이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보기도 한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기에
글쓴이의 ‘생각’에 따라 선택하는 단어(어휘)가 달라지기에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문장은 단어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동일한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서도
글쓴이의 생각(세계관,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는 단어가 달라지는 것이니 말이다.
글쓴이의 생각이 표현된 것이 ‘문장들’이고
‘문장들’에는 글쓴이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니,
‘문장’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즉, 어떤 문장을 쓰느냐에 따라
글쓴이의 생각이 읽는 이에게 더 잘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니, 그만큼 문장은 중요한 것이다.
나의 생각을 어떤 문장으로 옮길 것인가
많은 문장을 읽음으로써 내 생각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문장에는 글쓴이의 생각이 담겨 있기에 많은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읽는다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글쓴이와 함께 생각을 확장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왜 ‘브런치’ 작가님들의 문장을 모으는가. 시간이 많은 것인가.
그 시간에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문장이 담긴 ‘고전’과 ‘명저’를 읽고
그들에게서 문장을 모으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은 물음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위 물음에 되묻고 싶기도 하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고전’과 ‘명저’는 어떤 책인가.
‘고전’과 ‘명저’라고 일컬어지는 책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읽히는 책이라는 점에서,
그 기준은 다를 수 있지만, 내가, 우리가 꺼내 놓을 책은 많을 것이다.
여전히 읽지 못한, 읽어야 할, 읽고 싶은 고전이나 명저는 많다.
그들을 읽을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음에도 그 시간의 일부를 나누어
‘지금, 여기’, 나의 곁에서 살아 숨 쉬는 그대들의 생각을 읽고 싶은 것이다.
그대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읽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들 스스로가 ‘고전’과 ‘명저’를 써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많은 ‘고전’과 ‘명저’들 역시 그 이전의 ‘고전’과 ‘명저’를 통해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를 치열하게 읽어낸 이들이 써 놓은 책들이라고 여긴다.
그러하듯이, 그들 ‘고전’과 ‘명저’를 읽은 우리들이
‘지금, 여기’의 삶을 치열하게 써나감으로써 우리가 ‘고전’이 되고 ‘명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없었던, 이 세상 하나뿐인, ‘지금, 여기’ 이 시대의 ‘고전’과 ‘명저’는 그렇게 탄생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알고 있고, 믿고 있다.
2024.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