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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Nov 17. 2024

통속적인 정의감

‘지금까지 이런 OOO은 없었다’는 대사가 먼저 생각나는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보다가 문득, ‘멜로’가 뭐지, 궁금증이 일어 뜻을 찾아본 적이 있다.     


멜로[melo] 줄거리에 변화가 많고 통속적인 정의감이 들어 있는 오락 본위의 극

통속적[通俗的] 일반에게 널리 통하는 대중성과 보편성을 가진 것 

정의감[正義感] 의리에 맞고 옳고 떳떳한 일을 행하려는 마음      


‘멜로’에 ‘통속적인 정의감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줄거리가 뻔하거나 오락 본위가 아니면 멜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정의감’이라.     


멜로라고 불리는 작품들을 떠올려보니 그런가 보다 하면서도 ‘통속적인 정의감’이라는 말이 새로워 보이다가 그래야 ‘대중성과 보편성’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수긍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멜로에는 ‘통속적인 정의감’까지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 감독 상수가 촬영 중에 스태프에게 욕지거리를 하자 상수에게 욕으로 참교육하는 다큐 감독 은정도, 길거리에서 취객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은정을 구해주는 상수도, 통속적으로 정의로워 보인다.       


버는 돈을 모두 보육원에 기부하는 상수. 그런 상수가 마찬가지로 기부천사가 되기로 결심한 은정에게 ‘또라이세요?’라며 비아냥댄다. 기부천사를 통속적으로 만들고 싶은 통속적인 정의감일까.   

  

아이들에게 몹쓸 짓 하는 어른들은 죄다 갈아 마셔야 한다는 상수. 왜 기부를 하느냐는 물음에 균형때문이라고한다. 벌기만 해서는 안되고, 일만 해서는 안되고, 혼자서는 힘들고. 균형을 맞춰야 힘들지 않다는 것. 자신의 삶도 세상도 그렇다는 것이겠다.        




드라마 작가 지망생인 진주와 드라마 업계에서 젊은 나이(27세)에 스타감독 반열에 오른 범수. 작가 ‘지망생’과 ‘스타’ 감독이 만날 일이 있을까 싶은데, 있다, 원고. 드라마 감독에게는 원고가 필요하고 드라마 작가에게는 연출자가 필요하다.     


얼마나 원고가 탐났으면 가족과 함께 사는 진주의 집에까지 찾아간다. 아예 산다. 밥까지 차려주면서. 그런데도 진주는 범수의 제안을 거절한다. 진주의 전 남친이 조감독이었던 것. 진주는 다른 이유를 찾아 댄다. 범수의 말투가 매사에 재수 없다는 것. 정서적으로 교감이 안 된다는 것. 그래도 입봉의 기회인데 라며 친구들이 난리지만, 진주의 심정은 '사랑이 뭐길래'였을까.      


대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진주의 작품을 선택하여 회사에서 미움받는 통속적인 정의감을 발휘하는 범수. 물론, 진주가 아니라 자신의 작품때문이겠다. 일을 사랑하는 범수에게는 오직 작품이 중요할 뿐이다. 스타 감독이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를 배려하면서 말하지 못하냐. 묻는 진주에게 범수는 말한다. 능력 있는 것만으로도 넘치는데 굳이 집도 잘 살아.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 어머니는 대학 총장, 자신은 잘 나가는 스타 감독. 아쉬울 게 없는데 왜 굳이 아쉬운 게 많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야 하느냐.     


그런데, 아쉽다. 진주의 원고 때문이다. 세상 아쉬울 게 없는 범수가 아쉬운 게 많은 진주가, 아니, 진주의 원

고가 필요한 것이다. 진주는 재수 없지만 범수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다. 일 뿐만 아니라 사랑도.




그래도 세상은 통속적으로 정의롭다. 알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나약하고 아쉬운 것 투성이인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다시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나에게 멜로가 체질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와 지구인들의 삶이 ‘줄거리에 변화가 많고 통속적인 정의감이 들어 있는 오락 본위의 극’과 같기만 해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 괜찮을 것 같다.          



2024. 11. 17.     




멜로의 대사인가싶은 <멜로가 체질> 속 대사들     


“너 지금 주머니에 얼마 있어?  너 그거 지영이한테 다 줄 수 있어? 

3억이면? 그거 달라고 하지도 않아. 그냥 그런 마음만 있으면 돼.”     


“바쁜 세상이잖아. 작은 것도 특별하게 보고 넘기려고.”     


“그때 우린 그때의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한 거야. 

지난 시간은 그냥 두자 … 자연스럽게.”     


“밉지. 미울 수 밖에 없어. 그럴 땐 용기를 내 봐요.

미워하지 않을 용기를. 미워하는 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 귀한 거잖아.”     


“우린 오늘도 맛있게 떠들고 맛있게 먹고 맛있게 사랑한다. 

그 언제까지고 밤에 먹어야 건강한 라면은 나오지 않겠지만... 

뭐 좀 그렇더라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한 

우리의 지금에 행복을 느끼며... 뭐 좀 그래도 되잖아?”     


“세상에 가벼운 고백은 없고, 내가 싫다고 해서 상대방 

마음에 대해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에요. 

어쨌든 그 마음이 움직인 이유는 당신이니까.”          



대문사진 –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를 부르는 범수.     

멜로가 체질 /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어쿠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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