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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ug 16. 2023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읽기

1     


27세의 여성이 신문사 기자를 살해했다. 기자가 그녀에 대해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가짜뉴스들을 악의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가정부였던 그녀는 기자와 기사로 인해 하루아침에 강도의 정부가 되고, 허영심 많은 이혼녀가 되고, 병든 어머니가 충격으로 사망하는 일까지 겪는다.     


그녀를 알아본 택시 기사는 그녀에게 창녀라고 욕한다. 이웃들은 그녀를 피하거나 그녀의 행동을 주시한다. 성희롱 전화와 온갖 욕설과 음란 광고물들에 시달린다. 여성은 기자를 살해하고 경찰서에 가서 자백한다. 그리고 그녀는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1974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대략의 내용이다. 시간이 지나도 생각나고 여전히 읽히기 때문에 고전이라 부를 것이다. ‘지금 여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2     


살인은 흔한 일이 된 것 같다. 언론을 통해서 연일 충격적인 살인 소식을 접한다. 가짜뉴스일까 의심이 들 정도다. 서로 보살펴야 할 가족·연인·이웃들이 갈등하거나 등을 지는 일은 흔히 목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살인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중에는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서운 언론의 인격살인도 있다. 이 역시 흔한 일이 된 것 같다. ‘살인’을 알려주는 언론이 살인을 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살인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살인은 으레 있는 흔한 일일 뿐인 듯하다.    

 

언론은 세상의 일을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다. 보도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이 악의적 보도를 통해 인격살인을 한다면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살인’이 발생한 것은 ‘언론의 보도’ 때문이었다. 끊이지 않는 언론의 인격살인은 막을 수 없는 일일까. 그녀의 살인보다 더 궁금한 일이 되었다.     


     

3     


인격을 살해하는 보도의 원인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단독·특종·허위·과장 기사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낚아야 생존할 수 있거나 권력을 누릴 수도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언론이 처한 현실인 것이다.    


‘황색언론’이나 ‘선전지’는 자본의 생산물인 셈이다. 언론이 자본의 도구가 된 것이다. 자본에 의해 자본을 위해 도구가 된 ‘정치·법조·지식·언론’은 자본권력이 된다. 그럼에도 자본에 예속되지 않으려는 언론·정치·법조·지식도 있다는 사실은 중요해 보인다.     


자본이 생산한 것들이 알아서 재생산하는 지배구조가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절대적인 자연의 법칙은 아닌 것이다. 자본의 지배와 불균등하게 발전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기도 하고 의식화된 무의식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의 환경을 다르게 만들 줄 아는 것이 인간의 법칙이기도 한 것이다.      


    

4     


자본에서 비롯된 기자가 그녀에게 가한 인격살인과 기자에 대한 그녀의 대응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 모두 자본의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언론·정치·법조·지식이 자본의 도구가 되는 일이 지배적이지 않은 사회라면 그녀와 기자가 서로를 살해하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언론·정치·법조·지식이 함께 때론 혼자서라도 자본의 도구가 되지 않을 가능성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지금 여기에 여전히 존재하는 자본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는 언론·정치·법조·지식을 지켜내고 알려내는 일을 지속하는 것 그 자체가 가능성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기자도 여성도 아니지만 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본의 도구가 되어 자본을 위해서 살해하고 살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나 기자와 다르지 않다.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삶은 우리에게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도구화된 삶을 살게 한다.    


      

5     


살인은 게임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인격살인과 같은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강철 멘털로 자신을 무장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럴수록 자본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는 한 사람으로부터 여러 사람들과 가느다란 연을 이어가며 엮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만이 자본의 살인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만 같다.


2021.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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