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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Sep 17. 2023

자기로부터

영화 <디 벨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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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벨레>(Die Welle, The wave, 독일, 2008)의 데니스 간젤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묻는다. 아직도 독일에서 독재정치가 가능할까? 독일에서 더 이상 독재자가 안 나올까?  

     

독일의 고등학교 교사인 뱅어는 학교에서 한 주 동안 진행하는 프로젝트 주간 수업으로 ‘무정부주의’라는 주제를 맡고 싶었으나 ‘독재정치’라는 주제로 수업을 하게 된다. 맡고 싶지 않았던 주제. 하고 싶지 않은 주제이기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한 개인이나 집단이 대중을 지배하는 것. 자기 지배(Autokratia)를 의미하는 독재는 한 개인 또는 정부를 구성하는 한 집단이 많은 권력을 취해서 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도록 되어 있지. 나치독일은 끔찍했지. 충분히 알아먹었다고. 지랄 같은 나치, 그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럼, 네오나치는? 우리가 저지른 일도 아닌데 언제까지 죄책감 느껴야 해? 죄책감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역사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야.     


몇몇 학생들의 진지함은 대다수 학생들의 무관심과 침묵에 묻힌다. 독재가 나와 무슨 상관이람?! 독일에서 독재자는 더 이상 안 나올까? 더 이상 독재정치는 가능하지 않을까? 당연히 더 이상 독재는, 독재자는 없을 것이라는 학생들의 대답과 함께 뱅어의 '독재정치'는 시작된다.



2     


뱅어는 학생들과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대표자(뱅어)를 뽑고, 대표자에 대한 존경을 표할 것과 규율과 통제에 따를 것을 요구하고 공동체의 이름을 '디 벨레'(물결)라 짓고, 흰색 상의로 복장을 통일하고, 로고와 홈페이지도 만들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처음보다 두 배 이상 불어난 학생들, 아니 '디 벨레'의 멤버들은 강당에 모인다. 일주일 동안의 공동체 경험을 통해서 그들은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뱅어는 여전히 행복감에 도취되어 있는 학생들에게 '디 벨레'가 끝났음을 알린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고 무엇보다 '독재정치'를 학생들 스스로가 구현했기 때문에 수업의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즉, 학생들의 행복경험이 '디 벨레'의 멤버들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공동체로부터 배제함으로써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더 나아가 그들과 생각이 다른 학생을 배신자로 몰아 처벌을 하려 했고, '디 벨레'의 대표자인 뱅어가 시킨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디 벨레'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하고 자살하는 일까지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공동체 '디 벨레'를 지키려고 한다. '우리가 실수를 했지만 바로잡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뱅어는 그런 학생들의 생각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런 건 바로 잡을 수 있는 게 아냐.'     



3     


공동체를 이루면 구성원들 누구나 자신(들)과 다름에 대한 배제와 규율(법)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살인, 지배 권력에 대한 자기 동일시로 행하는 ‘독재정치’를 할 것이라는 감독의 입장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가 지향하는 듯 보이는 ‘무정부주의’는 다를지 의문이다.     


인간이기에 저지를 수밖에 없는 실수들을 끊임없이 바로 잡아가며 더 나은 방향으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인류는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 방향이 무정부의 상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가 지향하는 더 나은 방향이 어떤 곳이든 그곳으로 가는 길 역시 ‘지금, 여기’의 독재정치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어떤 독재정치를 선택할 것인가. 독재정치는 자기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다. 자기 선택에 달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름에 대한 배제나 폭력, 지배 권력과의 자기 동일시를 통해 독재정치를 누리는 행복을 선택할 것인가, 각자의 자기 독재가 배제와 폭력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다름과 갈등하거나 협력하며 독재정치의 성격을 바꾸어 가는 존중을 선택할 것인가.     


자기 독재자들의 독재정치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삶은 존중받겠다면 존중해야 하는, 배제하겠다면 배제당하는 삶이기도 하다. 존중과 배제, 어떤 독재정치를 선택할 것인가. 공동체의 삶은 존중과 배제 사이의 끝없는 자기 선택의 과정일 것이다.          



2021.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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