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진 Aug 05. 2023

삶, 떠남과 머무름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읽기

지금, 여기    

 

아마데우_ 우리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 다른 장소에 있거나 이전에 일어난 것들은 과거이다. 그리고 대부분 잊힌다. 

아마데우_ 우리가 장소를 떠날 때 우리 스스로의 뭔가를 뒤에 남기고 간다. 우리가 가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거기에 머문다. 거기에 다시 가야만 우리가 다시 찾을 수 있는 우리 안의 물건들이 거기 있다. 어느 장소에 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얼마나 짧은지는 상관없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과거는 잊힌다. 적어도 그 시간을 다시 찾지 않는 한은 그렇다. 해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재를 사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를 말하는 순간 ‘지금, 여기’라는 현재는 이미 과거이기도 하고 다가올 미래라고 말했던 것이 어느새 ‘지금, 여기’의 현재이기도 하다.     

 

그렇듯 우리는 동일하지는 않지만 서로 얽혀있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을 동시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의 현재를 산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재를 과거 및 미래와 더불어 ‘어떻게’ 사는가이겠다.  

    

지나가버린 현재 즉 과거를 만나러 떠나는 것, 여행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거 중 일부와 만나는 일은 그레고리우스가 그러했듯이 아주 우연히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러한 만남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이라는 점에서 단지 우연일 수만은 없겠다.   


        

떠남

     

아마데우_ 우리는 떠날 거야. 오직 너와 나만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로 갈 거야.   

에스테파니아_ 네가 원하는 이것들은 내가 아니라 너를 위해 원하는 거야.

아마데우_ 우리 모두를 위해 원하는 거야.

에스테파니아_ (그는 나를, 삶을 갈망했어요. 하지만 그가 원했던 여행은 그의 영혼으로 향하는 거였어요. 저한테 향하는 게 아니었어요) 난 못해 아마데우. 내가 평생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원하고 있어. 그리고 난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미안해.     


아마데우는 포르투갈의 독재정권이라는 ‘지금, 여기’의 현실에 맞서 저항한다. 그에게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이다. 아마데우는 ‘지금, 여기’와는 다른 현실을 바라며 저항을 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만난다. 그리고 친구의 연인에 대한 사랑은 결국 친구와의 우정을 넘어서 버린다.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으로 인해 그의 저항은 ‘지금, 여기’에 머물면서 싸워나가는 과정은 생략된 ‘그녀와 둘만이 존재하는 세계’라는 결과만을 갈망하는 것으로 바뀐다. 하지만 아마데우의 다른 현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그녀를 위한 것도, 그들 모두를 위한 것도 아닌, 아마데우 자신의 영혼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영혼을 위한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은 에스테파니아는 그의 여행에 동행하기를 거절한다. 삶은, 사랑은, 혁명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자신을 위한 것일까? 하지만 삶도, 사랑도, 혁명도 혼자서는 불가능한 여행일 뿐이다. 아마데우의 삶은, 사랑은, 혁명은 자신을 위해서 존재했을 뿐, 또 다른 자신, 즉, 타자와 함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라고 불러야 할까?

      

하지만 아마데우의 말처럼 삶이, 사랑이, 혁명이 “스스로에게 여행하는 것”이라면, 해서 “고독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라면, 또한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고독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성공이냐 실패냐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머무름     


그레고리우스_ 그들의 삶을 생각해 보면 아마데우와 에스테파니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 그들의 삶은 활력이나 긴장감으로 가득 찼어요. 

마리아나_ 결국에는 모두를 조각내버리죠. 

그레고리우스_ 하지만 살아났잖아요. 제 삶은 어디 있을까요. 지난 며칠간을 제외하고는.

마리아나_ 이제 다시 돌아가시네요. 왜 그냥 머무르지 않으세요?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삶에서 활력을 잃어버린 인물로 보인다. 어느 날 그는 한 여인, 한 권의 책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잠시 일상을 떠나게 되고 활력을 얻어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그는 한동안 일상에 머물 것이고 다시 일상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듯 삶은 떠남과 머무름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냥 머무르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은 “왜 그냥 떠나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으로도 들린다. 중요한 것은 떠나든 머무르든 타인, 혹은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해 나갈 수 있는가이겠다. 그렇다면 삶이라는 여행은 부단한 역사 속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성찰해 가는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과거-현재-미래의 어우러짐으로써의 역사를 성찰하는 일이기도 하겠다.       


    

리스본   

  

무엇보다 빌 어거스트 감독의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Nighttrain to Lisbon, 2013)는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아마데우와 에스테파니가 머물렀던 과거를 찾아 떠나고 싶게 만든 영화였다. 그레고리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2014. 7. 19.

이전 04화 머물지 않거나 떠나거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