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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ul 23. 2023

생각과 취향은 있다

'미소'의 생활에 대하여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다는 미소.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가 유일한 안식처라는 미소. 영화 ‘소공녀’의 미소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참 잘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 달리 표현할 말도 덧붙일 말도 없다. 그 이상의 의미 부여도 필요 없어 보인다. 미소는 ‘당당하고 야무지게’ ‘잘 살고 있다.’ 


미소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앞으로도 계속 잘 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도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것은 영화 속 미소와 미소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미소의 삶과 무관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오른 월세 때문에 집이 없어진 미소가 찾아가는 이들과 미소 사이에는 미소의 생각과는 달리 ‘다른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로 인해 그들 사이에는 크지 않으나 작지도 않은 마찰이 생긴다. 대학시절 뜨겁게 밴드를 하며 좋은 시절을 함께 했지만 지금은 뜨겁거나 좋을 수만은 없는 각자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다. 미소와 달리 그들은 이제 집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지켜내야 할 현실을 살고 있다.


하룻밤 재워주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닌 미소에게 예전에는 동생과 동기와 선배들도 그랬던 삶이 이제 달라진 것이다. 선배 언니 말처럼 월세 보증금도 없고 눈치도 없는 미소가 불편하거나 한심한 현실이 된 것이다. 미소는 괜찮다고 해도 남자친구 마저 그녀에게 늘 미안해하다 웹툰 작가의 꿈을 접고 외국에 돈 벌러 떠나는 것은 미소의 말처럼 ‘배신’이 아니라 ‘현실’이다. 


안 그랬던 그들이, 미소에게 뜨거움과 즐거움과 안식처였던 그들이 미소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런 것이다. 미소는 그대로인데 현실이 변한 것일까, 현실은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변한 것일까. 분명한 건 그들이 예전과 ‘다른 현실’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소와 그들 사이의 ‘다름’은 서로 인정하기도 공존하기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미소의 삶을 살라하거나 미소에게 그들처럼 살라하거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소처럼 당당하고 야무지게 자신의 생각과 취향대로 살거나 때로 서로에게 위로나 안식처가 되어주면 그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그것이 그들이 처한 현실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같지는 않을 다른 현실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소처럼 생각과 취향을 중요시하며 살고 있고 그렇게 각자의 생각과 취향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렇게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고 싶은 대로 살면서도 큰 마찰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의 형태도 나는 지향한다. 


미소와 그 주변인들의 생각과 취향이 사회의 형태를 이루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생각과 취향은 사회의 형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다. 그래서 내 생각과 취향대로 살기 위해서라도 늘 사회의 형태를 의식하며 공존할 수 있는 사회의 형태를 지향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여행하는 것이라는 미소의 말처럼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더라도 언제든 머물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은 갖고 싶고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겠지만 사회의 다른 현실들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늘 생각을 열어두고 싶고 다양한 취향들 속에서 취향도 바꿔가면서 살고 싶다. 이런 생각도 사회의 형태가 변함에 따라 또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이 사회의 형태를 바꾸기도 할 것이다.


2018.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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