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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ug 28. 2023

너라는 내 세상

1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리는 불 빨간 사춘기에는 병이 찾아든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뿜어내는 열병. 미래에 대한 열망을 품은 채 사춘기들은 자기 길을 찾아 나선다. ‘너라는 내 세상’을 기어이 만들고야 말겠다는 그들에게 모든 만남은 소중하다.


선생님, 친구, 역사, 책, 음악, 영화 속 ‘너’를 만나지만 학문이나 예술 그 자체가 ‘너’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 한 편의 영화가, 한 곡의 음악이 삶의 방향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니 매 순간의 모든 ‘너’와의 만남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모든 ‘너’와의 만남에 열려 있어야 할 그땐 미처 소중함을 몰랐지만 지나고 보면 내 몸 곳곳에 의식이 되어 감각이 되어 숨어 있다 때에 따라 깨어난다. 그 당시 미래였던 지금을 살게 한다. 그때 찾던 길을 걷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2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들국화’는 1집이 명반으로 꼽힐 만큼 음악도 좋았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여럿 이 함께하는 각자의 색깔이 다양했고 분명했기에 서로 부딪히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긴장 섞인 음악도 그들의 문화도 좋았다. 여러 멤버들이 드나들었지만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 주찬권을 주로 기억한다.


그들은 혼자였지만 함께였고 함께였지만 혼자였다. 의도된 만남이기도 했을 그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소리와 관계는 설렘과 흥분을 가져다주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또 다른 그들을 만나게 해 주었고 밴드나 드럼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찾는 아인 흔히 볼 수 없지/ 넓은 세상 볼 줄 알고/ 작은 풀잎 사랑하는/ 워워 흔히 없지 예예 볼 수 없지/ 내 마음이 맑을 때나/ 얼핏 꿈에 볼 수 있는/ 미운 사람 손을 잡고/ 사랑 노래 불러주는/ 빈 주머니 걱정 돼도/ 사랑으로 채워 주는/ 워워 흔히 없지 예예 볼 수 없지/ 내가 찾는 아인 매일 볼 수 있지/ 인권이 형 성원이 형 찬권이 형 구희형 진태도/ 워워 볼 수 있지 예예 볼 수 있지/ 워워 모두 다지 예예 모두 다지(들국화, ‘내가 찾는 아이’)


그들 각자가 서로 찾던 아이였다고 그들 모두는 그런 아이였다고 그들은 노래한다. 나 역시 그 아이들을 그렇게 기억한다. 나 또한 그 아이들처럼 되려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시간 그들과 함께했던 이들은 모두 그렇지 않았을까.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아이들과 그 시간을 함께하며 그런 아이를 찾으며 서로에게 그런 아이가 되려 했던 시간은 소중했을 것이다. 그런 시간을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비록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고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아이도 있지만 말이다.



3


너는 내 세상이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세상이 무너지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사라져 가는 걸 보면서/ 나는 한참을 울고 있었던 것만 같아/ 널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불 빨간 사춘기, ‘너는 내 세상이었어’)


불 빨간 사춘기 시절만 아니라 ‘너는 내 세상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너’를 가져 본 사람은, 그렇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그 세상이 무너지면’ 눈물도 나겠지만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언제까지나 ‘너라는 내 세상’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시 따듯’해지도록 ‘꼭 안아’ 주고 싶다고도 말해주고 싶다.


2021.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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