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自發’이라는 낱말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나서서 하는’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율’, ‘자립’, ‘독립’과 같은 낱말과 겹치기도 한다. ‘강제’, ‘타율’, ‘종속’ 등의 낱말과 대비되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사회 내 존재, 사회적 관계의 총체, 상호 의존적 존재, 연결된 존재’라는 규정들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상태 자체를 부정하게 만든다. 의존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의존하지 않는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인지, 어디서부터가 ‘스스로 나서’는 자발인지, 굳이 자발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자발’은 의존상태를 의식하고 부정할 때 발생하는 것일 게다. ‘자발’은 부정할 의존을 전제할 때 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존된 자발이기도 하다. ‘자발’이 ‘의존에 대한 의식적인 부정’에 의한 것이라면 왜 의존을 부정하려 하려는지 의존의 내용과 성격이 중요해진다.
‘관계’를 이루게 하는, 관계를 이루기 위해 필수적인 상호 ‘의존’이 어느 한쪽에 의한 ‘강제’, ‘타율’, ‘종속’을 야기한다면, 자율적이고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개체는 거부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그 감각적 반응은 의식적인 부정을 조직할 것이다. 그럴경우 ‘자발’의 내용과 성격에 대한 옮고 그름, 좋고 나쁨과 같은 가치 판단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연유에서 자율적이고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개체에게 내재한 사회화 된 자발이 자본 권력이나 국가 및 사회 기구들의 권력화한 강제나 타율에 의해 ‘자발적 복종’이나 ‘자발적 폭력’과 같은 행위를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겠다.
‘자본독재’ 아래 ‘의식’할 필요조차 없이 전자동 초연결 세계가 되어 감에 따라 ‘자발’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여긴다. 어떤 ‘자발’인가, ‘자발’의 내용과 성격이 중요해진다. 자발적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해진다. 자발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냐는 ‘자발의 가치’가 중요해진다고 여긴다.
-하영진, '자발하는 의존', <꿈꾸며 한 걸음> 108-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