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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ug 15. 2023

일은 자기실현일까, 고통일까

「일은 자기실현일까, 고통일까」라는 글에서 류동민은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어떤 일을 취미로 즐긴다면 출발은 즐거움이고 자기실현을 한다는 보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일’이 되면 생존을 염려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생존을 유지하려고 일해야 하는 악순환에 맞닥뜨린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할 때 무리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 하며, 즐길 수도 없고, 때로는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류동민은 모르텐 알베크의《삶으로서의 일》을 인용하며 일의 의미는 “일에서 얻는 만족이나 행복과는 서로 다른 얘기”라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의 경험을 예로 든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만족이나 행복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건이지만, 가족과 지인들이 한데 모여 누군가를 추모하면서 정신적 유대를 나누는 의미 있는 일이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일은 자기실현일까, 고통일까’,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류동민은 ‘노동의 본질은 무엇일까?’ 묻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답한다. “노동이 그 자체로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매 순간은 아니더라도, 어느 한순간이라도 힘듦이나 괴로움을 넘어 노동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각자 노동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의 본질에 접근할 때, 이른바 자기실현으로서의 일의 역할도 충족된다. 경제학에서도 노동을 한편으로는 비효용(Disutility), 즉 만족이나 효용(Utility)의 반대 개념, 요컨대 고통(Toil and trouble)이라 보는 관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실현’이나 ‘소외의 극복’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사실 이 두 가지 관점은 모든 노동이 지닌 두 측면을 묘사한 것이며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일의 의미를 깨닫기도 하고 아울러 일의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류동민의 주장에 따라 ‘노동의 본질’을 ‘그 자체로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주장에 따라 ‘일(노동)의 의미’를 노동이 가진 두 측면, ‘고통과 자기실현’이 만나는 지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통해 ‘노동해방의 의미’를 ‘고통과 자기실현’이 만나는 지점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노동이 ‘고통이냐, 자기실현이냐’는 이분법을 넘어 고통은 줄이고 자기실현의 영역은 확장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지혜의 발현은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그 자체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생산방식으로 변화시켜 가는 것일 수 있을 테다. 그와 같은 지혜로운 행위가 자기실현의 한 양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방식’에서 사람들은 화폐 없이 생존할 수 없기에, 화폐의 축적 정도가 사회적 인정의 척도가 되기에, 화폐를 소유하고 축적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게 만드는, 화폐가 생기는 일만 하고 싶게 만드는 욕망 구조를 생산하기에, 부모·연인·친구·와 같은 사랑과 우정으로 맺어져야 할 관계마저도 화폐로 환산하게 만들기에, 그와는 다른 생산방식을 살아보기 위해서 ‘非자본주의적인’,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관계 맺음을 통해 ‘화폐 중심 생활방식’을 ‘잠들게’ 하는 것도 자기실현의 한 양태일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자기실현의 행위를 통해 ‘자본독재국가’의 성격을 ‘노동자민주국가’로 바꾸어 나가는 매 순간들은 당면한 인류의 ‘경제 및 기후위기’를 해소해 가는 데 결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인류사의 위기가 전 지구적이라는 점에서 인류사에 이제까지 없었던 ‘노동자민주국가’라는 ‘사건’의 생성을 우연에 맡길 것이 아니라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우연 같은’ 필연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21세기 우연의 철학들이 자기실현을 통해 생성해야 할 ‘사건’ 일 것이다.


*류동민의 글에 대한 인용은 <류동민:『이상하고 아름다운 밥벌이의 경제학』, 빚은 책들 2022, 26~29쪽 참조>


202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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