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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ul 25. 2023

내일을 위한 시간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읽기

보너스와 산드라의 복직을 선택하는 투표에서 산드라의 동료들은 보너스를 선택한다. 그리고 산드라는 복직을 위해 싸움을 선택한다. 산드라는 자신을 선택한 동료의 도움으로 반장에게 재투표를 요구하고 받아들여진다.


그녀의 싸움은 투표권이 있는 동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 전부다. 동료들 16명 중 과반수인 9명이 자신을 선택해야만 복직이 되는 것이다. 해고당한 동료가 안타깝지만 1,000유로라는 보너스를 선뜻 포기하겠다는 동료는 많지 않다. 산드라는 자신을 선택하지 않는 동료를 원망할 수도 없고 동료들을 만나서 특별히 할 말도 없다. 생계를 위해서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말밖에는. 각자의 생계가 달린 문제 앞에서 설득이나 동정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해고당한 산드라가 좀 더 절실해 보일 뿐이다.


재투표에서 산드라는 8표를 얻음으로써 복직에 실패한다. 사장은 동료들 간의 분열을 원하지 않는다며 산드라의 계약직 동료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 대신 산드라를 복직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산드라는 동료의 해고를 통해 자신이 복직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제안을 거절한다. 보너스 대신 산드라를 선택한 동료들의 마음은 산드라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동료의 해고를 통해서 나의 이득을 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회사를 나오면서 산드라는 또 한 명의 동료인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절반의 동료들이 자그마치 1,000유로라는 보너스를 포기하고 그녀를 선택해 주었으니 충분히 잘 싸웠고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해고 앞에서 산드라가 싸움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과 동료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그녀의 싸움은 애초에 시작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싸울 줄 몰라서 싸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싸워서 좋을 일이 뭐가 있어서 싸우느냐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싸우지 않고도 세상 일이 좋게 해결된다면 그 보다 더 좋을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살다 보면 싸워야 하는 일이 생긴다. 특히 이웃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갑들의 횡포는 더럽다고 무섭다고 피하면 영원히 더러움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은 갑의 횡포에 맞선 싸움을 피하거나 싸움에서 계속 밀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싸움의 방식을 가지고 동료들끼리 싸울 것이 아니라 힘겹게 용기를 내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싸우는 이가 있다면 박수를 보내고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그럴 때 갑의 횡포에 맞선 싸움은 더 용이해질 것이다. 산드라의 싸움은 권력이나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것과의 싸움, 내가 절박해서 하는 싸움일 뿐이다. 그보다 더 적합한 싸움의 방식이 있을까. 싸움의 방식보다 싸움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지속적으로 싸울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산드라에게 생계를 위한 복직 싸움이 중요하듯이 중요해 보이는 이야기를 중요해 보이도록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중요해 보인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것도 그들 방식의 싸움인 것이다. 일방적인 해고라는 생명의 위협 앞에서 내일이라는 시간은, 행복은 싸움 속에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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