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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ug 13. 2023

효진이 진짜 엄마네

영화 <당신의 부탁> 읽기

자신이 낳은 것도 아니고, 이미 죽고 없는 남편의 아이를 키워달라는 부탁에 갑작스레 엄마가 된 효진. 주변 사람들이 난리 칠만도 하다. 키워야 할, 키워줘야 할 이유가 없는 데다 효진의 앞날도 걱정될 것이다.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도 남아 있었을 것이고 열여섯이면 어느 정도 다 컸다는 판단에서 효진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예상 못한 건 아니었겠지만 엄마 노릇은 만만찮다. 무엇보다 ‘진짜’ 엄마가 아니라서 엄마로 인정하지 않는 종욱이 말끝마다 아줌마,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이 못 마땅하다. 그래도 효진은 효진 자신의 엄마처럼은 살기 싫었던지라 엄마와 다르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보다 남편은 잘 못 만났지만 그래도 자신의 일도 있고 주관도 뚜렷하고, 그게 엄마랑 다른 것일까. 효진도 효진의 엄마가 효진에게 그랬던 딱 그 엄마 같다. 종욱을 걱정하고 혼내고 걱정하고 챙기고.


"신학기에 책을 받았는데 낙서가, 그것도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낙서가 되어 있는 책을 받아 든 기분." ‘진짜 엄마’를 찾아다니는 종욱에게 진짜 엄마가 뭐가 그래 중요하냐는 효진의 말에 종욱은 자신의 기분을 그렇게 말한다. 묻는다. 그런 기분 아느냐고.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던 효진의 처지도, 낙서책을 받아 든 것 같다던 종욱의 기분도, 낳아 준 건 아니지만 기른 정 주고 떠나버려 야속했지만 그 엄마를 찾고 싶은 종욱의 심정도 알만한 것들이다. 엄마가 돼 본 적도 없고 될 수도 없지만 엄마들의 모습은 친숙하다.  

    

영화 <당신의 부탁>은 영어 제목 <Mothers>처럼 ‘엄마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엄마들을 생각나게 했던 영화였다. 그리고 친숙한 엄마들의 모습들이라서, 그래서인지 덜 친숙했던 엄마, 실수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주미의 모습이 잔상으로 많이 남았다. 고통 속에 낳은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주미. 입양을 결정한 주미. 친구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한 종욱이 아이가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묻지만 고개 돌리던 주미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효진의 말대로 주미가 키우는 것보다 입양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선택일지언정 그 아이에게는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분명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아이에게 물어본 건 아니지만. 진짜 엄마는 아니지만 안정적인 환경에서라면 아이는 더 잘 자랄 것이다. 주미도 다행히 아이가 그런 부모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주미가 피임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실수로 임신을 하게 되었지만 주미가 건강하게 건강한 아이를 낳아 아이를 원하면서도 낳지 못해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입양을 하는 과정은 건강해 보였다. 미성년의 나이지만 뜻하지 않게 임신을 하거나 임신을 원하지만 임신을 하지 못하는 부부들의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그 이후에 일이 어떻게 풀려나가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보였다.

 

그럼에도 주미가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은, 그게 최선이었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주미의 상황은 마음 편하지 않다. 당사자인 주미만 하겠나 만, 주미도 아직은 실감이 잘 나지 않는 듯 보였지만 언젠가 아이를 사무치게 찾지 않겠나. 종욱이 그랬듯이 주미의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엄마가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아이는 또 진짜 엄마를 찾지 않겠나. 효진의 말처럼 잘 자라면 됐지 잘 키워준 엄마가 진짜 엄마지 진짜 엄마가 뭐가 중요하겠나 만. 그러고 보니 효진이 부탁을 들어 줄만 했네. 효진이 진짜 엄마네.


2018.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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