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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움 Jul 25. 2023

자리를 지킨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읽기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성우는 밤무대며 각종 행사무대를 전전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밴드 생활을 한다. 그와 함께하던 밴드 멤버들은 딴따라 취급을 받으며 먹고살기 힘든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떠나간다. 하지만 성우는 그 자리다. 어린 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은 성우에게 묻는다. 우리들 중 유일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행복하냐고. 


영화는 성우와 그의 친구들이 누렸던 꿈과 행복의 지난날로 돌아간다. 그들의 꿈같은 시절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해 꿈과 행복에 대해 생각하기 힘들 만큼 먹고살기 바쁜 일상을 돌아보게 해 준다. 단지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친구의 사정을 들어주지 못하는 친구 사이. 그 사이에는 늘 돈 문제가 끼어 있다. 그렇게 당연한 듯 차려진 세상살이라는 판을 엎어버리지만 성우는 그 자리다. 


그래봤자 뻔한 듯 당연한 듯 함께 어울릴 수밖에 없는 밤무대 같은 삶을 살아갈 뿐이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할 만한 주제도 못 되는 변변찮은 인생이라고 말하지만 사장님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벌거벗겨진 채 노래하는 인생이지만 성우는 그 자리다. 밤무대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성우가 지키고 있는 그 자리는 자신의 삶일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 누구도 대신 만들어 줄 수 없는 자신만이 만들어 갈 수 있기에 소중한 그 자리를 지키는 삶. 자본주의는 그 무엇보다 돈을 우선하게 만든다. 음악을 하는 성우도 또 다른 노동을 하는 친구들도 다르지 않다. 영화는 자신의 삶을 돈에게 빼앗겨버린 인간들의 삶이 얼마나 초라한지 보여준다. 


다른 친구들과는 달라 보이는 성우도 초라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초라함을 어떻게 대하는가일 것이다. 끝없는 초라함을 돈으로 위로하려다 더 초라해질 것인지 초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자본주의를 내 뜻대로 살아낼 ‘자신’을 가지고 있는가의 차이일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넘어 자신의 삶을 자신의 자리를 지키게 해 줄 삶의 형식들을 만들어 가는 일일 것이다. 성우에게 음악은 그런 형식들 중 하나일 것이다.


초라한 내 모습이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이다. 그럴 때 지난날을 생각해 보는 일은 소중해 보인다. 그것이 성찰이든 그리움이든. 초라한 내 모습이 싫지만 “내게도 사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뿐”이라던 성우와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때문에 내일은 행복할 거”라는 사랑밖에 모른다는 인희는 그 자리에서 만난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 세상 이러 구러 살아가오. 그렇게 돈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다 보면 하고 싶은 음악과 친구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가는 뜻대로 되는 일도 생기나 보다.


2016.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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